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한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시청률이 30%에 육박하며 광고는 완판됐고 촬영지는 관광지로 급부상 중이다. 중국에서 10억 뷰를 기록한 데 이어 프랑스 등 19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인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도 등장해 박근혜 대통령으로 하여금 “좋은 문화 콘텐츠 하나가 커다란 경제적·문화적 가치를 낳는다. 한류 드라마를 관광상품 개발에 적극 활용하라”는 주문을 내놓게 했다. 지금 기세라면 중국 대륙을 휩쓸며 3조 원에 이르는 부가가치를 만든 ‘별에서 온 그대’의 파급력을 가볍게 넘을 전망이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을 휩쓸고 K-팝에 유럽 젊은이들이 열광하며 낯선 중동에서도 우리 드라마가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다니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 문화 산업에서도 빠르게 선진국을 따라 잡아 새로운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인이라면 은근히 문화적 자부심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지난주 열린 파리 도서전을 취재하면서 이 은근한 자부심의 허약한 근거가 여지없이 깨졌다. 파리 도서전은 출판사들의 저작권 거래가 중심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등과 달리 독자 위주의 행사이다.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은 프랑스 독자를 위한 도서전이다 보니 이제까지 한국에선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하면서 취재한 파리 도서전은 취재 기자와 우리 출판 관계자들을 여러 번 놀라게 했다. 개막일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에 놀랐고 유치원생부터 백발노인까지 책을 읽고 사고 즐기는 모습에 놀랐다. 전시장 곳곳에서 열리는 강연, 대담장은 가득 찼고, 강연이 끝나면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비롯해 총리, 문화부 장관, 경제부 장관 등이 찾아 전시장에 몇 시간씩 머무는 모습도 놀라웠다. 이 힘이 프랑스를 문화 강국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두 번이나 전시장을 찾은 오드레 아줄레 문화부 장관은 도서전이 어떻게 이렇게 성공할 수 있느냐는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프랑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책을 사랑한다. 정부가 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원했기에 책 읽는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며 “문화는 프랑스의 심장이며 그 중심에 책이 있다”고 말했다.
아줄레 장관의 말을 들으며 문화가 프랑스의 심장이라면 우리에게 문화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서 문화는 우리를 뜨겁게 하는 심장도, 우리를 움직이는 머리도 아니고, 그저 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조 경제’의 맥락에서만 이해되고 가치는 경제적·산업적 액수로만 환산되는 문화. 수출되고 관광을 부흥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경제적 가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문화를 경제 논리로만 보면 돈이 되지 않는 문화는 가치 없는 것이 되고 사람들은 문화 산업의 소비자로 전락하게 된다. 문화는 산업 이전에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진정 문화적인 나라가 되려면 빅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시선을 바꿔야 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봐도 근본을 튼튼히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이롭다.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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