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골프의 아버지로 불린 톰 모리스 시니어. ‘올드’ 톰 모리스로 불리는 그는 올드 코스에서 클럽 프로로 있으면서 골프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03년 귀족 출신의 화가 조지 리드가 그린 것이며 영국왕실골프협회(R&A)가 소장하고 있다.
영국 골프의 아버지로 불린 톰 모리스 시니어. ‘올드’ 톰 모리스로 불리는 그는 올드 코스에서 클럽 프로로 있으면서 골프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03년 귀족 출신의 화가 조지 리드가 그린 것이며 영국왕실골프협회(R&A)가 소장하고 있다.
최초의 디 오픈 챔피언에게 주어진 모로코산 붉은 벨트. 버클에는 4명의 골퍼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새겨 넣었다.
최초의 디 오픈 챔피언에게 주어진 모로코산 붉은 벨트. 버클에는 4명의 골퍼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새겨 넣었다.
제1회 디 오픈에서 당대 최고였던 톰 모리스 시니어를 꺾은 윌리 파크. 모리스 집안만큼이나 파크의 가문도 골프 명가로 소문나 있었다. 1864년 리스 골프장에서 열린 한 대회에 참가해 샷을 준비하고 있다.
제1회 디 오픈에서 당대 최고였던 톰 모리스 시니어를 꺾은 윌리 파크. 모리스 집안만큼이나 파크의 가문도 골프 명가로 소문나 있었다. 1864년 리스 골프장에서 열린 한 대회에 참가해 샷을 준비하고 있다.
‘디 오픈’ 1860년 첫 개막

첫닭이 울 때쯤인 오전 5시 잠을 설치던 톰 모리스 시니어가 일어났다. 그는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9세인 아들 톰 모리스 주니어를 깨웠다. 오늘 벌어질 경기는 그에게 너무나 중요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캐디를 자청했다. 1860년 10월 17일 스코틀랜드 서쪽 해변의 프레스트윅 골프장에 오전 7시부터 1만 명에 이르는 군중이 모여들었다. 영국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골퍼 8명이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을 펼치기 위해 등장했다. 이날 대회는 스코틀랜드의 ‘골프 지존’으로 군림하던 앨런 로버트슨의 1주기 이벤트인 동시에 공석이 된 영국 골프의 최강자를 가리는 자리였다.


디 오픈은 모리스의 노력으로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의견 차이로 스승 로버트슨에 의해 올드 코스 공방에서 쫓겨나 프레스트윅에 둥지를 틀었지만 그는 늘 스승을 존경했다.

모리스는 영국 골퍼의 넘버원이던 로버트슨 사망 이후 당대 최고의 고수라는 칭호를 물려받았기에, 원년 대회에서 반드시 챔피언이 돼야 했다. 출전자 8명, 단출하게 시작된 이날 경기는 세계 최초의 공식 대회이자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디 오픈(THE OPEN)’의 시초다. 8명만이 참가한 작은 대회였지만 조직위원회 등 격식은 모두 갖췄다. 참가한 프로들에게 지급하는 우승 상금은 없었다. 그리고 프레스트윅 골프장 회원들의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수여되던 모로코산 가죽으로 만든 붉은색 챔피언 벨트가 트로피를 대신했다. 가죽 벨트 주변에는 다섯 개의 은색 버클이 있고, 그 위에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장식으로 새겨놓은 화려한 벨트였다.

유력한 우승 후보는 로버트슨의 그늘에 가려졌던 모리스와 윌리 파크 등 두 명이었다.

파크는 당시 골프 명가로 추앙받던 파크 가문의 선봉장이었다. 경기는 단 하루, 12홀을 3차례 도는 36홀 스트로크 방식이었다. 12홀의 총 길이는 3800야드였고, 18홀 한 라운드를 하루에 두 번 도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경기는 정오에 시작됐다. 파크는 앞조에, 모리스는 뒷조에 속했다.

홈의 이점을 안은 모리스는 차분했다. 초반부터 팽팽한 접전이 펼쳐질 것이란 예상은 깨졌다. 각자 자신이 히코리 나무로 만든 샤프트를 끼운 드라이버로 티샷했는데, 파크의 샷이 모리스보다 10야드 이상 더 나가곤 했다. 모리스는 라운드 내내 이어지는 파크의 신들린 샷을 막지 못했다.

12홀의 첫 라운드 결과는 파크의 승리. 파크는 55타로 모리스(58타)를 3타 앞섰다. 휴식시간 없이 두 번째 라운드가 열렸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쌀쌀한 바람은 샷을 방해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둘에겐 바람이, 날씨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혼신을 다해 만회하려는 모리스와, 도망가려는 파크의 선전이 이어졌다. 2라운드는 동타(59타). 여전히 파크가 3타 앞섰다.

1만여 갤러리들도 지칠 줄 몰랐다. 두 패로 갈라져 응원에 열을 올렸다. 주최 측에서 제공한 점심식사를 마친 뒤 마지막 3라운드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1, 2위인 파크와 모리스가 한 조로 출발했다.

39세의 모리스는 27세의 파크를 상대하기에는 체력적으로 벅찼다. 183㎝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크의 드라이버 샷을 모리스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모리스는 대신 정교한 샷으로 맞섰다. 3라운드에서는 모리스가 59타, 파크가 60타. 모리스는 1타를 따라잡는 데 만족했다. 파크의 팬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모리스는 176타(58-59-59)를, 파크는 174타(55-59-60)를 남겼다. 제1회 디 오픈의 우승 벨트는 파크의 허리춤에 채워졌다.

모리스의 예상치 못한 패배 소식은 영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로버트슨 이후 당대 최고라는 모리스는 자존심을 구겼고 특히 홈에서 패배해 상심이 컸다.

하지만 이날 대결이 끝이 아니었다. 이후 수년 동안 둘의 자존심 대결은 계속됐고, 두 집안은 대를 이어 영국 골프를 이끌어 나가며 골프 명가의 대접을 받았다.

절치부심한 모리스는 2회를 비롯해 디 오픈에서 모두 4차례 우승을 차지, 3번 우승한 파크를 제치면서 자존심을 회복했다.

원년 대회에서 아버지의 패배를 목격한 모리스의 아들은 8년 뒤 17세 나이에 디 오픈에서 우승했다. 톰 모리스 주니어는 여전히 디 오픈 역대 최연소 챔피언으로 남아 있다. 그는 또한 디 오픈을 3연패해 모로코산 붉은 벨트를 영구히 소장했다. 이로 인해 벨트 대신 트로피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톰 모리스 주니어 덕분에 지금의 ‘클라레 저그’가 있는 셈이다.

남양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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