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회 열린 ‘프레스트윅’
최초의 디 오픈은 올드 코스에서 열렸어야 했지만, 프레스트윅에서 진행됐다. 왜 그랬을까. 새로 발명된 고무 볼로 인해 올드 코스 공방의 스승이었던 앨런 로버트슨에게 쫓겨난 톰 모리스 시니어는 에든버러 서남쪽에 위치한 프레스트윅 골프장에 거처를 마련했다.
모리스는 이미 5, 6년 전부터 스코틀랜드를 대표할 골프대회를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머릿속에 담아 뒀다. 올드 코스는 로버트슨의 사망으로 영향력이 사라졌고, 설상가상으로 옥수수밭 개간업자들과의 소송에 휘말렸다. 대회를 개최할 만한 형편이 안 됐다. 모리스는 10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직접 페어웨이의 잔디를 깎고 그린을 보수했다. 프레스트윅 골프장을 갈고 다듬었다.
모리스의 오랜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공식적인 첫 대회가 그의 홈 코스에서 열린 것이다. 비록 자신을 내쳤지만 로버트슨을 위해 첫 대회를 개최했고, 첫 우승 벨트를 스승의 영전에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첫 대회 우승의 꿈은 윌리 파크에 의해 좌절됐지만, 모리스는 더욱 큰 것을 얻었다.
향후 10년간 오직 프레스트윅에서만 디 오픈을 치를 수 있는 ‘허가증’을 얻어냈다. 19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에서 프레스트윅만큼 성숙한 골프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디 오픈은 올드 코스에서 열렸어야 했지만, 프레스트윅에서 진행됐다. 왜 그랬을까. 새로 발명된 고무 볼로 인해 올드 코스 공방의 스승이었던 앨런 로버트슨에게 쫓겨난 톰 모리스 시니어는 에든버러 서남쪽에 위치한 프레스트윅 골프장에 거처를 마련했다.
모리스는 이미 5, 6년 전부터 스코틀랜드를 대표할 골프대회를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머릿속에 담아 뒀다. 올드 코스는 로버트슨의 사망으로 영향력이 사라졌고, 설상가상으로 옥수수밭 개간업자들과의 소송에 휘말렸다. 대회를 개최할 만한 형편이 안 됐다. 모리스는 10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직접 페어웨이의 잔디를 깎고 그린을 보수했다. 프레스트윅 골프장을 갈고 다듬었다.
모리스의 오랜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공식적인 첫 대회가 그의 홈 코스에서 열린 것이다. 비록 자신을 내쳤지만 로버트슨을 위해 첫 대회를 개최했고, 첫 우승 벨트를 스승의 영전에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첫 대회 우승의 꿈은 윌리 파크에 의해 좌절됐지만, 모리스는 더욱 큰 것을 얻었다.
향후 10년간 오직 프레스트윅에서만 디 오픈을 치를 수 있는 ‘허가증’을 얻어냈다. 19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에서 프레스트윅만큼 성숙한 골프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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