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의 난(亂)’은 온갖 명분·논리를 다 걷어내면 결국 권력투쟁이다. 친박과 비박, 현재와 미래를 기반으로 벌인 정파 싸움일 뿐, 대다수 국민에겐 누가 승자가 되든 상관이 없는 게임이었다. 정작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항명이 다른 한편에서 진행 중이다. 없던 길을 내며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가를 교묘하게 무릎 꿇리는 ‘관료의 난’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新)산업 규제로 의심되면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내야 할 것만 살리겠다”고 한 것이 지난달 17일이다. 규제의 네거티브화를 천명한 박 정부 의지를 가늠할 첫 시험대가 심야 콜버스였다. 스마트폰 앱으로 승차 거부에 시달리는 승객과 유휴 전세버스를 연결시킨 파괴적 혁신이다. 박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 천명 후 8일 만에 국토교통부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는 형식으로 답안지를 내놓았다. 그게 절묘하다.
국토부는 스마트앱을 통한 콜버스를 허용했다. ‘우버’에 불법 딱지를 붙여 내쫓았던 것에 비하면 큰 진전이다. 하지만 방점은 뒤에 있었다. 택시·노선버스 등 면허사업자에만 운행 자격을 줬고, 차량도 13인승 ‘쏠라티’로 한정했다. 대중교통의 신영역을 개척한 박병종(30) 콜버스랩 대표는 기존 사업자에게 의탁해야 할 처지가 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패자가 된 것이다. 다음엔 서울시가 발을 걸었다. 서울시는 택시업계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현재 밤 10시부터인 콜버스의 운행 시작 시간을 2시간 늦춘 ‘자정∼5시’라는 중재안을 냈다. 택시 승차거부는 밤 11시∼새벽 1시에 집중돼 있다. 콜버스는 수지를 맞출 수 없고, 승차거부 방지 효과도 미미해진다. 콜버스 정책은 모두를 살리는 솔로몬 지혜로 보였지만, 실은 창조적 진입자를 무력화시키는 ‘창조적 규제’였다.
신산업에 대처하는 관료의 무기는 세 가지다. 첫째, 적법성이다. 길을 터주고 싶어도 법규에 없으니 안된다는 거다. 콜버스 운행을 기존의 면허사업자로 국한한 것이 예다. 둘째, 안전성이다. 콜버스랩의 ‘발’인 전세버스를 불허한 것도 심야 영업 다음 날 낮 학원버스 등으로 과로 운전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안전사고를 방지한다는 취지다. 셋째, 윈·윈이라는 명분이다. 국토부·서울시는 시종 소비자보다는 기존 업계가 받을 타격에 신경을 썼다. 신산업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현재 메커니즘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다. 기존 문법으로는 어딘가 불안해 보여도 일단 부딪쳐보면 반드시 답이 나온다. 미국에선 우버 기사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이를 검증하겠다는 스타트업이 뒤이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또 다른 투자와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바로 신산업이다. 윈·윈은 듣기엔 좋아도 논리상 파괴적 혁신과 양립할 수 없는 가치다.
콜버스에 앞서 ‘헤이딜러’가 있었다. 대학생이 만든 이 온라인 중고차 경매서비스는 돌풍을 일으켰으나 1년 만에 하차했다. 지난해 말 자동차관리법 개정으로 주차장·경매장이 없는 자동차 경매가 불법이 됐는데, 국토부의 ‘청부 입법’이었다고 한다. 있는 법도 고쳐 길을 터줘야 할 판에 거꾸로 법을 만들어 진입을 막았으니 규제혁파를 내세운 박 대통령에게 도전한 형국이다.
신산업에 도전하는 기업들 사이에선 빨리 규제해달라는 기막힌 호소도 나온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해도 규정이 없어 인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치킨 프랜차이즈업체 BBQ가 배달문화를 바꾸겠다고 도입한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는 현행법규에 분류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10개월째 묶여 있다. 이미 유럽에선 거리를 활보하는 틈새 차량이다. 일반자전거와 다를 바 없는 전기자전거는 원동기면허 취득 의무에 시장이 막혀 있고, 3D 프린터로 인공장기를 만들어도 안전성 인증 기준이 없어 팔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은 속도전이다. 인공지능(AI)·로봇·사물인터넷·바이오 등 차세대 기술이 교통·물류 파괴 등 서비스 혁신과 결합하면서 상상조차 못 했던 기회를 만들어낸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 경제강국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는 무대에서 아차 하는 순간 흐름에 뒤처지고 만다. 속도전의 요체는 규제와의 전쟁이다. 박 대통령의 호언이 무색하게 아직까지 익사한 규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기이한 형태의 신규제만 더 생겨났을 뿐이다. 박 대통령은 관료들의 은밀하고도 지능적인 역행(逆行)을 두고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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