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그때 김광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따라 일어선 유정수가 우물쭈물했을 때 긴 머리가 곧장 다가왔다. 그러더니 유정수 옆에 털썩 앉았으므로 짧은 머리는 자연스럽게 김광도 옆에 앉는다. 선택권이 여자한테 있는 것이다.
“반갑습니다.”
이제 김광도가 옆에 앉은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잘 모시겠습니다.”
한랜드의 룸살롱 여종업원들이 손님에게 하는 인사다. 그때 여자가 풀썩 웃었으므로 덧니가 드러났고 ‘차도녀’ 같던 인상이 따뜻하게 변했다. 앞쪽 유정수는 아직 입도 떼지 않은 터라 시선이 이쪽으로 모였다. 그때 여자가 김광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저희를 파트너로 정해 주신다면…….”
정색한 김광도가 쇼트커트를 보았다.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화장기가 없는 얼굴에 솜털까지 보인다. 맑고 밝다. 직장인 같다. 심호흡을 한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오늘 밤을 책임지겠습니다.”
김광도가 여자 앞에 잔을 내려놓고 술을 따랐다. 앞장섰던 여자가 유정수 옆에 앉은 것은 당연했다. 유정수는 흰 피부에 귀공자형 미남인 데다 날씬한 체격이다. 김광도와는 대조적이다. 술잔을 든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전 김동수라고 합니다.”
서동수의 이름만 빌렸다. 멘토는 이럴 때도 이용하게 된다.
“전 전윤희라고 합니다.”
술잔을 든 여자가 웃음 띤 얼굴로 김광도를 보았다.
“오늘 밤 어떻게 책임지실 건데요?”
“내가 윤희 씨 부탁을 하나 들어드리죠.”
한입에 술을 삼킨 김광도가 지그시 전윤희를 보았다.
“딱 하나만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말인가요?”
“답답한 일, 분한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들어드리지요.”
“왜요?”
“그저 오늘은 생색을 내고 싶어서요.”
그때 앞자리의 파마머리가 말했다.
“얘, 장난 그만해.”
유정수와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더니 이쪽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전윤희가 말을 그쳤을 때 종업원이 들어왔다. 얼음을 가져왔는데 방 안 분위기를 살피려는 눈치다. 김광도가 종업원에게 말했다.
“이분들 술, 이곳으로 옮겨.”
“예, 사장님.”
얼굴을 편 종업원이 바람을 일으키며 나갔을 때 전윤희가 말했다.
“저희 술값은 저희가 낼게요.”
김광도의 시선을 받은 전윤희가 눈웃음을 쳤다.
“공연이 취소되어서 그래요. 극장 여유가 없다고 해서요.”
전윤희가 턱으로 앞쪽 여자를 가리켰다.
“쟨 연극 감독이고 전 기획자죠. 그러니 김 선생님께선 생색내시기 어려운 일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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