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마법사’라고요? 등에 날개를 단다고요? 어머나, 기가 막혀…. 난 오글거리는데, 주변에선 ‘평소대로 하라’고 하네요, 하하하하하하.”시원하게 웃는다. 호탕하다기보단 익살스럽다. 장난기 많은 ‘소년’처럼. 중후한 저음과 카리스마로 무대를 휘어잡던 댄버스 부인(레베카), 신들린 듯 굿판을 벌이던 명성황후(잃어버린 얼굴 1895), 뚱뚱한 흑인 여가수 에피(드림걸즈)는 어디로 갔나. 어둡고 우울한 역할이 많아 생긴 ‘오해’가 풀린다. 시종일관 밝고 털털했고 (심지어 ‘조명발’이 없는데도) 곱고 예뻤다. “메이크업 기술이 발달해서 그렇죠, 하하하하하하.” 16분음표 같은 웃음이 또 터진다.
뮤지컬 배우 차지연을 만났다. 오는 5월엔 초록마녀 엘파바(위키드)로 변신한다는 소식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무대 위 ‘센’ 기운 대신 독특한 유쾌함으로 사람을 무장해제시켰다. 날개 달린 마법사 역, ‘딱’이다.
“이제 ‘폼’ 그만 잡으려고요. 송화(서편제)나 명성황후(잃어버린 얼굴 1895) 역을 맡았을 때는 지나치게 몰입해서 일상도 마치 작품처럼 살고 악몽도 꾸곤 했어요. 이젠 무대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요령도 생겼고요. 원래 농담도 좋아하고 장난도 많이 쳐요. 남편(배우 윤은채) 만나고 더 밝아졌죠. 요즘엔 너무 헤헤거려서 제가 봐도 좀 삽살개 같지만.”
차지연은 국내 뮤지컬계에서 톱으로 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배우 중 하나다.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소리에 익숙했던 차지연은 2006년 ‘라이언 킹’으로 데뷔한 후 10년간 탄탄하게 실력을 다졌다. 한정된 공간(공연장)을 벗어나 대중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바로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2011년)와 올 초 화제가 된 ‘복면가왕’이다. 임재범의 코러스(나는 가수다)로 주목받은 그녀는 5년 뒤엔 캣츠걸(복면가왕)로 5연속 우승, 스스로 가왕(歌王) 자리에 올랐다. ‘간신’(2015)에 이어 4월 개봉하는 ‘해어화’까지, 영화도 두 편이나 찍었다. “한때는 ‘나도 TV에 나가면 잘할 텐데’라는 생각도 했어요. (대중적인 스타들이) 부럽기도 했고…. 그럴수록 ‘오늘이 마지막 무대’라는 생각으로 혼신을 다했죠. 그게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단단한 티켓 파워라고 믿었거든요. 감사하게도 방송이나 영화가 그 ‘길’에 휘발유가 됐죠. 특히, ‘캣츠걸’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하지만 전 뮤지컬로 시작했고 가장 사랑받았고…. 지금, 이곳(무대)이 제일 중요해요. 떠날 수 없어요.”
뮤지컬 ‘위키드’는 오는 5월 18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개막한 후, 7월 12일에야 서울 예술의전당으로 올라온다. 차지연은 “남편이랑 어떻게 떨어져 지내야 할지 벌써 막막하다”고 너스레를 떨더니 함께 캐스팅된 또 다른 ‘마녀’들(정선아, 박혜나, 아이비)에 대해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아름답더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온몸을 무대에 부딪혀온 그녀는 일에서만큼은 완벽주의다. 신경쇠약에 걸린 그레첸(더 데빌·2014)을 소화하기 위해 필라테스 특훈을 받았던 차지연은 지난해엔 에피(드림걸즈) 역을 위해 14㎏가량을 찌웠다. “‘엘파바’는 지금보다 4㎏을 줄여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자신만 녹색이라는 것, 즉 남들과 다르다는 건 엄청난 ‘자기와의 싸움’을 만들 거예요. 그런 사람은 살이 찌기 쉽지 않죠. 마르고 날카로운 인상을 하고 마음속엔 따뜻한 온기를 품었다…. 그게 제가 해석한 ‘엘파바’인데 솔직히 저랑 좀 비슷합니다, 하하.”
공교롭게도 댄버스 부인(레베카)과 엘파바(위키드)는 모두 초연 때 옥주현이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역할.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뮤지컬 최고 여배우로 자리 잡았다. 차지연은 “작품이 들어오는 건 내 마음과 관계없다. 그저 ‘운명’이다. 작품은 같아도 사람(배우)은 다르니까, 그저 ‘나만의 것’ ‘차지연스러운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지금 가장 자신 있게 ‘차지연스럽다’고 꼽을 수 있는 배역은 무엇일까. “‘잃어버린 얼굴 1895’가 아닐까요. 실존인물(명성황후)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음, 아직 다른 배우들이 하지 않은 역할이니까요.”(웃음)
글=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사진=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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