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 중반 이후 축조… 토제벼루 등 발굴
경주 월성(月城)에서 관청지로 추정되는 통일신라 후기 건물지 군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30일 경북 경주시 인왕동 월성 발굴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동서 51m, 남북 50.7m의 담장을 둘러친 건물지 군에서 총 14기의 건물 배치 형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발굴조사를 맡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건물지는 인화문(도장무늬) 토기, 연화문 수막새 등의 유물이 다량으로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8세기 중반 이후 축조됐다. 또, 함께 출토된 흙으로 만든 벼루와 명문 기와들을 통해 건물지가 관청 지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사적 제16호인 월성은 신라 파사왕 22년(101) 축성을 시작해 그 해 7월부터 왕이 거주했던 곳으로, 935년까지 궁성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3월부터 발굴조사 중이다. 총면적이 20만 7000㎡에 달해 편의상 4개(A~D) 구역으로 나웠으며, 현재 중심부인 C지구와 서편 A지구의 문지·성벽을 조사 중이다.
건물 유구와 함께 토제 벼루와 명문 기와·토기 등도 다량 확인됐다. 토제 벼루는 50점 이상 출토됐는데, 이는 월성 주변 동궁과 월지, 분황사 등에서 출토된 양보다 월등히 많다. 건물지에 문서를 작성하는 중심 공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와와 토기에는 ‘정도(井桃)’ ‘전인(典人)’ ‘본(本)’ ‘동궁(東宮)’ 등이 새겨져 있다. 연구소 측은 “전인(典人)은 궁궐 부속관청인 와기전(기와·그릇 생산 담당)에 소속된 실무자를, 본(本)은 신라 정치체제인 6부 중 하나인 ‘본피부’, ‘동궁’은 태자가 거처하는 궁궐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경주 월성(月城)에서 관청지로 추정되는 통일신라 후기 건물지 군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30일 경북 경주시 인왕동 월성 발굴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동서 51m, 남북 50.7m의 담장을 둘러친 건물지 군에서 총 14기의 건물 배치 형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발굴조사를 맡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건물지는 인화문(도장무늬) 토기, 연화문 수막새 등의 유물이 다량으로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8세기 중반 이후 축조됐다. 또, 함께 출토된 흙으로 만든 벼루와 명문 기와들을 통해 건물지가 관청 지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사적 제16호인 월성은 신라 파사왕 22년(101) 축성을 시작해 그 해 7월부터 왕이 거주했던 곳으로, 935년까지 궁성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3월부터 발굴조사 중이다. 총면적이 20만 7000㎡에 달해 편의상 4개(A~D) 구역으로 나웠으며, 현재 중심부인 C지구와 서편 A지구의 문지·성벽을 조사 중이다.
건물 유구와 함께 토제 벼루와 명문 기와·토기 등도 다량 확인됐다. 토제 벼루는 50점 이상 출토됐는데, 이는 월성 주변 동궁과 월지, 분황사 등에서 출토된 양보다 월등히 많다. 건물지에 문서를 작성하는 중심 공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와와 토기에는 ‘정도(井桃)’ ‘전인(典人)’ ‘본(本)’ ‘동궁(東宮)’ 등이 새겨져 있다. 연구소 측은 “전인(典人)은 궁궐 부속관청인 와기전(기와·그릇 생산 담당)에 소속된 실무자를, 본(本)은 신라 정치체제인 6부 중 하나인 ‘본피부’, ‘동궁’은 태자가 거처하는 궁궐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