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 베이징 특파원

중국의 시간은 빠르다. 10년여 만에 찾은 베이징(北京)은 과장되게 말하자면 톈안먼(天安門) 빼고는 다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휴대전화 없이 살았던 시대를 뛰어넘어 세계에서 핀테크가 가장 발달한 곳이 됐다. 중국의 시간은 느리기도 하다. 내륙 소수민족 거주지에는 아직도 스마트폰은커녕 휴대전화 없이 사는 사람도 많다. 50년이 넘는 격차가 2016년이라는 한 시점에 동시에 나타나는 ‘비동시적 동시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중국이다. 그래서 자신이 겪은 것, 본 것만으로 중국을 ‘이렇다’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지난 1년간 기자가 주로 접한 도시 중산층, 즉 대학 졸업(혹은 재학) 이상의 학력, 베이징 혹은 지방 대도시에 거주하는 10대 후반∼40대 중국인으로 한정해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이들은 해외여행을 즐기며 유학을 가고 외국 화장품을 사들인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문화적 수요가 폭발적이다. ‘국산’보다는 ‘외제’를 선호한다. 개혁·개방 초기 시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와는 달리 고도성장 과실 속에서 자랐다. 부모가 젊은 시절 분양받거나 대출을 받아 도시에 마련한 부동산은 열 배 가까이 가격이 뛰었다. ‘글로벌(環球)’ ‘국제 기준’ 등의 단어는 언론 매체뿐 아니라 일상용어로도 자주 오르내린다. 영어 몰입 교육을 위해 외국인 원어민 교사가 가르치는 ‘쌍어(雙語·중국어와 영어)유치원’에 자녀를 보내고 외국에 유학 보낼 생각도 있다. 기업들은 세계로 뻗어 나간다. ‘이만큼 해냈다’는 자신감, 과거보다 생활수준이 높아졌듯 미래는 더 좋을 것이라는 낙관과 여유가 보인다. 마윈(馬雲)이나 왕젠린(王健林)처럼 젊은 시절 평범했던 사람이 아시아 최고 부자이자 세계적 기업가로 성장한 ‘성공 신화’를 다룬 책은 베스트셀러다. 정권 차원에서 ‘반부패’가 강력하게 실시된다.

여기서 한국 드라마를 홍콩 영화, 미국 문화로, 반부패를 공직자 재산등록제도 시행 및 금융실명제로, 마윈과 왕젠린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 바꾸고 정도의 차이를 지우면 1990년대 한국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김영삼정부는 ‘세계화’를 내걸었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들고 나온 ‘세계 경영’이 언론 매체를 휩쓸었다. 조기유학 붐이 불기 시작했으며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배낭여행이 유행했다. 대중문화의 폭발적 발전 속에 ‘X세대’와 ‘압구정 오렌지족’이 등장했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표현 속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를 넘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2016년 중국은 OECD 가입을 준비 중이며 대도시의 1인당 GDP는 1만∼2만 달러 선이다.

지금까지가 ‘1990년대 한국 데자뷔’라면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았고 이후 한국 경제 낙관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중국이 1990년대 한국처럼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될까. 조지 소로스의 말처럼 ‘경착륙’하거나 급격히 빠져나가는 외환보유고로 인해 외환위기를 겪게 될까. 베이징에서 만난 경제 전문가들은 당시 한국과 중국은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중국은 과거 아시아 국가들이 겪은 외환 위기를 보면서 학습했고 외부에서 제기하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대책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 통제 등 ‘정책적 수단’을 쓸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도 있다. 경제 규모나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설명을 들어도 불안감이 쉽게 떨쳐지지 않는 것은, 한국 경제의 상당 부분이 중국 경제의 ‘종속변수’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은 한국에는 악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간 6% 이상 성장하는 최대 경제체이자 시장을 옆에 두고 과도하게 위축돼 함께 성장할 기회를 놓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리스크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지만, 중국 경제 경착륙이 또 다른 ‘한탕’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월가의 투기세력과 한국 경제가 이해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go@munhwa.com
박세영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