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 / 전국부장

‘사이비 주민투표’가 유령처럼 우리나라 전역을 배회하고 있다. 투표(Voting)란 행위의 껍데기만 빌린 여론조사, 그것도 편향된 일부 의견만 대변하는 이런 식의 여론몰이를 앞으로는 주민투표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부산에서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을 놓고 이른바 주민투표가 강행된 후 주최 측이 ‘공급반대 89.3%’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이 여론조사는 2004년 제정된 주민투표법에 의한 정식 주민투표가 아니다. ‘기장해수담수 공급 찬반 주민투표추진위’란 민간조직이 그냥 주민투표 시늉을 낸 데 불과하다. 당연히 법적 효력도 없다. 백번 양보해 ‘반핵 부산시민 대책위’ 같은 시민단체들이 다수 포함된 주민투표관리위가 “주민의사를 직접 확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투표’를 강행했더라도 전체 유권자의 26.6%밖에 참여하지 않은 결과를 공표한 것 역시 불법이다. 법에 없는 투표를 멋대로 해치우고, 개표 정족수에 미달하는데 멋대로 투표함을 열고…. 이 과정을 지켜봤던 부산시 공무원은 “주민투표법을 준용해 투표한다고 해놓고 (발표해선 안 될) 결과를 공개한 것은 다른 목적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투표에 불참한 대다수 주민의 의사도 존중해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이런 일은 전에도 몇 차례 더 있었다. 지난해 11월 경북 영덕에서 원전 유치 찬반을 놓고 ‘무늬만 주민투표’가 강행돼 역시 32.5%의 투표율로 개표 요건에 미달하는 데도 ‘유치반대 91.7%’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2004년 전북 부안에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 찬반에 이런 유의 사이비 주민투표를 처음 동원해 입지변경 여론전에 성공했다 여겨 반복하는 것인가. 공통법칙은 이렇다. 진보 농민단체와 전교조 지부 등 이념적으로 편향된 단체들이 나서 주민투표추진위를 꾸린다. 합법적인 주민투표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협조는 전혀 못 받는다. 그래서 투표인명부 작성, 투표소 설치, 투표 및 검표 관리 등을 모두 ‘자율적’으로 한다. 영덕에서는 추진위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일일이 주소와 이름 등을 적어온 명단의 객관성에 의혹이 일기도 했다. 투표의 전 과정이 ‘사적(私的)’ 행위라는 한계 때문이다.

주민투표는 국민투표를 지방자치 단위로 축소한 제도다. 정치학자들은 국민투표를 둘로 나눈다. 개헌같이 헌법상 커다란 의사결정을 묻는 국민투표(Referendum)와 통치상 필요로 행해지는 일회적 국민투표(Plebiscite)가 그것이다. 주민투표는 이 두 가지 성격을 겸비한 지역 민의(民意)의 확인장치로 해석된다. ‘일부 시민’은 현행 주민투표법의 요건이 너무 엄격하다며 사이비 주민투표로 뛰어든다. 그러고는 맘대로 위법을 저지른다. 그들이 갖다 붙이는 주민투표란 말은 합법절차를 가장해 입장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투쟁의 선전 도구로 전락했다. 주민투표법 제1조는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 제고’를 목적으로 선언한다. 하지만 사이비 주민투표에는 주민도 없고 민주도 없다. 또 한 번 제안한다. ‘민간 주도의 주민투표’란 표현은 언론부터 쓰지 말자. ‘주민 의견조사’로 족하다.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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