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 논설위원

2010년 6월 29일과 2016년 3월 23일의 공통점은?

뜬금없는 질문 같지만 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잊지 못할 날이다. 6년 전 6월 29일은 국회 본회의에서 이 전 대통령이 적극 추진했던 세종시 수정안, 즉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이 찬 105표, 반 164표로 부결된 날이다. 당시 박근혜 의원이 5분 발언을 통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며 반대를 선언하자 친박을 비롯한 상당수 의원이 ‘미래 권력’에 줄을 섰다. 이날을 기점으로 MB정부의 임기 말 현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정운찬 총리를 비롯해 박재완 국정기획 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까지 줄줄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반면 박 대통령은 명실공히 ‘여의도 대통령’으로 군림하기 시작한다.

지난 23일은 ‘옥새를 들고 튀어라’ 등 온갖 패러디 물이 난무할 정도로 세간의 화제가 된 김무성 대표의 ‘옥새투쟁’이 벌어진 날이다. 총선 후보 등록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김 대표의 반란이 시작됐고 결론은 김 대표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지난해 6월 국무회의 석상에서 박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며 공언한 이후 거의 1년 동안 친박은 유 의원 퇴출에 집중했다. 박 대통령은 유 의원 부친 상가에 조화조차 보내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배신의 감정을 표출했다. 유치한 ‘진박 놀음’까지 벌이면서 밀어내려고 했던 유 의원은 살아나고, 자객 공천하려던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은 입후보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눈엣가시 같던 이재오 의원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그동안 개헌론, 국회법 개정 파동 등 박 대통령과 어긋날 때마다 30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청와대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30시간 안에 끝났지만 굴복하지 않고 고개를 쳐들었다. “99번 가랑이 밑을 기어도 마지막 승부에서만 이기면 된다”는 김 대표의 말처럼 영도다리 위의 결기를 보여준 것이다. 여권 인사들이 김 대표와의 화해를 건의할 때마다 박 대통령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아시잖아요”라며 레이저 눈빛을 쏘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이번 일을 계기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레임덕은 이제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흔히 레임덕의 조짐으로는 대통령의 인사권과 국가 정책이 내부 반발로 잘 실행되지 않거나, 권력형 비리가 시작된 경우를 꼽는다. 또 공직사회가 움직이지 않고 각종 정보가 통제 불능이 될 때도 그렇다. 김영삼정부는 차남 현철 씨 비리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김대중정부는 ‘홍삼트리오’로 대표되는 아들의 비리, 노무현 전 대통령도 형 노건평 씨, 이명박 전 대통령도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비리가 터지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박 대통령은 이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공식적으로 동생 지만 씨와 조카들을 한 번도 청와대로 부르지 않을 정도로 주변 관리를 철저히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나름대로 자신 있다고 하는 정치의 영역에서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다름과 소신을 배신과 불충(不忠)으로 여기고 이들을 인위적으로 배제하려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던 것이 패착이다. 여기에 칼자루를 잡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서투른 칼질이 사태를 더욱 부추겼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면 저항할 수밖에 없고, 민심은 약자 편에 서게 마련이다. 친박의 오만이 스스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유승민, 이재오, 진영 의원 등이 만약 20대 국회에 생존해 온다면 그동안 벌였던 진박 마케팅은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공직사회는 서서히 미래 권력에 줄을 설 것이고, 국정 추진력도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오는 7월 전당대회를 치르고 이후에는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 새누리당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장악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명박 정권을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어김없이 거쳐 갔던 여당 탈당 문제도 쟁점화할 수 있다.

경제 안보 위기 속에 레임덕은 국가적 재난이다. 퇴임을 10개월 앞두고 레임덕 얘기가 없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단해 보인다. 총선이 끝나는 14일 뒤가 걱정스럽다.
이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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