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도 사회적·문화적으로 내재된 개개인의 감정이 폭발하면서 탄생했다고 한다. 그림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프랑스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도 사회적·문화적으로 내재된 개개인의 감정이 폭발하면서 탄생했다고 한다. 그림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감정의 항해 / 윌리엄 M 레디 지음, 김학이 옮김 / 문학과지성사

감정,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지만 딱히 정의하기는 어려운 개념이다. 어떤 사람은 아주 사적인, 때로는 이성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는 기쁨·불안·슬픔 등 인간만이 겪는 희로애락의 마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감정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합의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근래 “감정 연구에서 혁명이 발생했다”고 말할 정도로 감정에 관한 연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미국 듀크대에서 역사학과 인류학을 가르치는 윌리엄 M 레디 교수의 ‘감정의 항해’는 감정 연구에 관한 그간의 역사와 함께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던 시기인 프랑스혁명 전후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감정에 대한 연구는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심리학자들의 “인지 연구를 위해 고안된 실험실 연구기법을 감정 문제에 적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민족지학자들이 고안한 “감정의 문화적 차원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현장연구 기법과 새로운 이론 장치”다. 세 번째는 역사가들과 문예비평가들이 주장하는,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에 대한 개념이 모호하지만, “감정이 역사를 갖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감정 연구를 둘러싼 세 가지 혁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때론 서로 보완하며 발전하고 있는 양상을 (어렵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장황하게 보일 정도로 감정 연구의 세 가지 흐름(혹은 혁명)을 정리한 이유는 ‘감정의 역사화는 가능한가’를 묻기 위해서다. 감정이 개인의 사적인 마음 상태가 아니라면 그것이 지닌 사회적·문화적 맥락이 분명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사실 개인적 맥락에서 공동체적 맥락으로 가는 흐름을 추적하는 저자의 주장은 독특하다. 감정은 개개인의 “상황에 대한 인지”인데, 특정 상황에 놓인 인간은 모든 삶의 경험을 총동원해 의식, 즉 삶의 목표를 설정한다. 모든 경험을 총동원하는 과정은 일차적으로 개개인의 ‘내밀한 영역’에서 나오지만 그간의 삶에서 터득한 ‘지극히 사회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결국 모든 체제는 저자가 고안한 개념인 ‘이모티브(imotive)’, 즉 “생각 재료를 활성화시키고 감정을 발동시키는 것”을 격려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 결국 감정의 역사화는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지속돼온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1부 감정이란 무엇인가’는 ‘2부 역사 속의 감정 : 1700∼1850년 프랑스’를 쓰기 위한 세밀한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혁명기 프랑스에서 분출된 감정을 체계화하고 역사화함으로써 감정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던져야 할 보편적 질문’임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프랑스혁명에 유독 주목하는 이유는 “혁명이 그 자체로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정과 그것을 활성화하는 체제의 이모티브가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는 데 기인한다. 오히려 감정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야 프랑스혁명의 속내에 깊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18세기 내내 일어난 권력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감정’을 통해 읽어냄으로써 프랑스혁명이 도래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소상히 설명한다. 생물학적 감정론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저자는 사회적·문화적으로 내재된 감정이 개개인의 마음을 뒤흔들었고, 그 감정이 폭발하면서 프랑스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가 탄생했다고 강조한다. 물론 혁명을 주도한 각 개인의 감정이 어디를 지향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출하는 대중의 감정은 자유와 평등을 향해 있었다는 것이다. ‘감정에 경직된 규율을 요구’하는 시대 속에서 많은 프랑스인들은 전례 없는 새로운 종류의 감정의 자유를 부르짖었다고 볼 수 있다. 혁명 직후 자유로운 이성과 낭만적인 열정이 사회적 감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처럼 개개인의 감정에 충실한 시대도 없다. 문제는 그 감정이 ‘감정의 항해’에서 강조된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반영하기보다, 개인의 자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측면으로 강화된다는 점이다. 어디에 방점을 찍을 건지는 역시나 개인의 감정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감정의 항해’는 대중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성찰하는 기회이자 우리 사회의 감정이 어떤 지형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임에 분명하다.

장동석 출판평론가·기획회의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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