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환자의 안전보다 이윤 추구에 열을 올리는 제약사의 현주소를 고발한다. 의약품의 안전성을 묻고 부조리한 마케팅 기법, 임상시험, 감독기관과의 유착 등 문제를 지적한다.
책은 환자의 안전보다 이윤 추구에 열을 올리는 제약사의 현주소를 고발한다. 의약품의 안전성을 묻고 부조리한 마케팅 기법, 임상시험, 감독기관과의 유착 등 문제를 지적한다.
의약에서 독약으로 / 미켈 보쉬 야콥슨 외 지음, 전혜영 옮김 / 율리시즈

이윤 추구에 눈먼 제약사와 의약품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많은 책 중 이 책의 존재가치는 650쪽을 넘어서는 방대한 분량에 담아낸 다양한 사례에 있다. 제약사가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윤리성마저 저버린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책의 기획자이자 대표 저자인 미켈 보쉬 야콥슨 워싱턴대 교수는 제약산업의 폐단을 경고해온 세계적인 의학전문가 12인을 선별하고 그들의 대표 저작물과 인터뷰 등을 모아 책을 구성했다. 처음으로 항우울제의 위험성을 고발한 데이비드 힐리 영국정신약리학협회 책임자, 소염제 성분 COX-2의 문제를 지적한 존 에이브럼슨 하버드대 교수 등 필진이 쟁쟁하다.

글로벌 제약시장 조사기관인 IMS헬스에 따르면 거대 제약사들의 전 세계 연간 매출액은 2011년 9560억 달러에 이른다. 2002년 4000억 달러에서 2배 이상으로 뛰었다. 2012년 1월 의약품산업의 국제 종합주가지수는 1조6000억 달러로, 은행보험(4조 달러)과 석유회사(3조4000억 달러) 부문에 이어 전 품목 중 3위를 차지했다.

책에 따르면 이런 급속한 성장의 내면에는 거대 제약사의 부조리가 자리한다. 이들은 빈곤국가에서 발생하는 수면병, 말라리아 등 질병 치료제는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 제약사 훽스트 마리온 러셀은 수면병을 호전시키는 에플로니틴을 개발하고도 기대했던 이윤을 얻지 못하자 생산을 중단했다.

거대 제약사의 관심은 우울증, 암, 고혈압, 당뇨, 발기부전 등 선진국의 병, 그중에서도 지속적인 투약이 필요한 것들이다. 여기에 경쟁사보다 빨리 약을 개발하기 위해 무리가 따른다. 부작용이 발견되고 효능이 낮아도 덮어두고 제품 출시에 나선다. 리처드슨-머렐의 콜레스테롤 치료제 MER/29는 유명한 이야기다. 1960년 나온 약은 피부가 파충류의 비늘처럼 굳는 비늘증, 탈모, 백내장 등 부작용이 발생했지만, 리처드슨-머렐은 개인의 ‘특이체질’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약의 위험성을 부인했다. 1962년 내부 직원이 경영진으로부터 의약품의 유해성을 조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하고 나서야 회사는 약품 회수에 나섰다.

이처럼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약들이 시중에 나올 수 있는 것은 로비력과 광고를 통한 눈가림, 제약사와 감독기관 간 회전문 인사 등 때문이라고 책은 말한다. 2007년 한 해 거대 제약회사들이 미국 국회의원에게 뿌린 로비 금액은 1억8900만 달러에 달했다. 제약사는 대중매체 광고는 물론, 관련 협회에 지원금을 주며 비판을 사전에 차단한다. 프랑스 강직성척추염협회의 경우 2013년까지 애보트, 화이자 등으로부터 3만2500유로를 받았다. 제약사 직원들은 위키피디아 등 인터넷 공간의 의약 정보 중 불리한 내용을 삭제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또 공을 들이는 것이 주요 인물 스카우트. 제약회사 자문관으로 이직한 유럽 의약청 행정책임관 토마스 론그렌 등 사례가 많다.

제약사는 약을 팔기 위해 기존에 없던 병도 만든다. 미국 정신과협회가 발간하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MS)에 실린 정신질환은 1952년 106가지에서 1994년 297개로 늘었다. 섬유근육통, 월경전증후군, 저장강박장애 등은 제약사가 용어를 만들고 관련 약을 팔면서 자리를 잡은 질병이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를 ‘질병의 브랜드화’로 부른다. 불안완화제, 수면제 등 생명보다 ‘라이프스타일을 개선해 주는 약’이 넘쳐나면서 ‘약품의 일상화’는 이제 현실이 됐다. 병을 만들어 내면 건강한 사람도 언제든 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의사들의 직업적 도덕성을 확인하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한다. 제약사 직원으로 가장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유명 의사 5명에게 중증환자들을 상대로 한 플라세보(가짜 약을 먹어도 심리적 영향으로 효능이 발생하는 현상) 효과 실험을 의뢰한 것. 이런 실험 형태는 환자에게 위험을 줄 수 있어 세계의사협회의 ‘헬싱키 선언’에 의해 배척되고 있다. 그러나 의뢰를 받은 5명의 의사 모두 실험 참여에 동의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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