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사업은 노력한 만큼 얻어진다는 공통점이 있죠.”
제주도에서 ‘여걸(女傑) 골퍼’로 널리 알려진 이숙자(55) 성일레미콘㈜ 대표는 40대 후반이었을 때 남편의 사업을 물려받았다. 이 대표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3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첫째는 긍정의 마인드, 둘째는 정직하고 올바른 제품 생산, 세 번째는 노력이다. 이 대표는 변함이 없이 지켜온 자신만의 경영 원칙을 골프에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를 지난 3월 23일 제주 블랙스톤 골프장에서 만났다. 이 대표의 회사는 이 골프장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이 대표는 전업주부였다. 제주 출신인 이 대표는 결혼 후 서울에서 남편(서주은·2009년 작고)의 중장비 관련 사업을 돕다 세 자녀를 두면서 20년 가까이 아이들 뒷바라지만 해왔다. 그러다 남편이 새 사업거리를 찾는다며 제주로 내려갔고, 1년쯤 지나서는 제주에서 살다시피 했다. 남편이 ‘함흥차사’가 된 이유는 물론 있다. 지금의 레미콘 사업을 시작해 바빴던 탓도 있지만, 골프에 푹 빠졌기 때문. 이 대표는 남편과 상의해 서울 사업체를 정리, 직원들에게 넘겨주고 남편을 따라 제주로 내려왔다. 그런데 남편이 2009년 1월 갑자기 암으로 사망했다. 담관세포암을 너무 늦게 발견한 탓에 손쓸 겨를도 없이 1년 만에 세상을 떴다. 자녀 뒷바라지만 해오던 이 대표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사업체를 이어받은 이 대표는 남자들도 힘들다는 건설업종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이 대표를 위로하고 격려한 게 바로 골프다.
이 대표는 2003년 5월 골프를 시작했다. 당시 세 자녀가 학교 다닐 때였다. 남편은 제주 라온 골프장 챔피언전에 출전해 준우승을 내리 3차례 차지했을 만큼 실력파였다. 남편은 레슨 한 번 받지 않았고,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독학으로 배웠다. 이때 이 대표는 어깨너머로 골프를 배웠고, 이후 연습장에 석 달 다닌 뒤 골프장을 ‘출입’했다. 남편이 지녔던 3개의 골프장 회원권은 지금까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 대표의 골프 기량은 싱글 핸디캐퍼 수준. 베스트 스코어는 몇 해 전 한라산 골프장에서 기록한 이븐파 72타다. 버디와 보기를 4개씩 남겼고, 전후반 36타씩을 쳤다. 9홀짜리 언더파는 여러 차례 쳤지만, 승부욕이 앞서는 바람에 후반에 오버파를 친 경우도 많단다.
홀인원은 3차례나 경험했고, 파4 홀 ‘샷 이글’은 6개나 된다. 첫 홀인원은 2010년 9월 추석 명절 때였다. 1주기를 맞은 남편 산소에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블랙스톤 북코스 2번 홀(파3)에서 기쁨을 누렸다. 두 번째는 2014년 7월 동호회 모임이 있던 오라 골프장 남코스 13번 홀(파3)에서였다. 150m 거리였지만 앞바람이 불어 3번 우드로 친 볼이 벙커 턱을 넘기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세 번째는 지난해 5월 블랙스톤 남코스 6번 홀(파3)에서였다. 130m 거리의 뒤핀이었는데 잘 맞았다는 느낌에 그린에 갔더니 볼이 없어 혹시나 하며 핀 쪽으로 갔더니 홀에 들어가 있었다.
첫 홀인원 후 보험을 2계좌로 늘렸다. 3차례 받은 보험금만으로 기념 볼을 만들고 홀인원 턱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3차례나 보험금을 타자 보험사에서 추가 가입을 거부했다.
잇따른 홀인원은 사업에도 행운을 가져다줬다. 어려울 것만 같던 레미콘 사업이 제주지역 건축수요가 늘면서 주문량이 폭주, 물량을 제때 대지 못할 정도가 됐다. 레미콘뿐 아니라 아스콘, 골재 등 건설 원자재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이 대표는 연 매출 200억 원대를 훌쩍 넘겨 제주지역에서 20여 업체 중 10위권으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매일 오전 8시면 출근해 오전에 몰아서 일을 처리한다. 이 대표는 “직원들에게 안정된 회사에 다닌다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다”며 “직원들이 회사에서 마시는 물이나 식단까지 내가 마시고 먹는다고 생각하며 일일이 챙기는 것도 일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꼼꼼하면서도 직설적인 성격이다. 골프를 쳐 보면 그의 ‘여걸’ 스타일에 동반자들이 반한다. 이 대표는 드라이버를 190m 가까이 날리던 시절 남자들과 ‘화이트 티’에서 같이 쳤다. 볼 치는 소리만 들으면 남성으로 착각할 만큼 파워를 지니고 있다. 이 대표는 연습스윙을 하지 않는다. 스윙에 머뭇거림이 없다. 요즘엔 ‘레이디 티’에서 치지만 동반자들이 티샷하는 사이 어느새 ‘레이디 티’에서 샷을 마치고 동반자들이 기다릴 틈도 없이 함께 코스를 걸어나간다. 동반자들이 이 대표를 ‘좋은 멤버’로 꼽는 이유다.
직설적인 성격 탓에 좋이 않은 기억 하나를 ‘제조’했다. 90∼100타를 오가던 시절 ‘불의’를 참지 못하고 골프 백을 싸들고 나온 적이 있다. 한 티칭프로와의 라운드였는데 자신보다 거리도 많이 나고, 스코어도 좋았던 프로였지만 매너는 빵점이었다. 그 프로는 해저드에 볼이 빠지자 그린 주변에 볼을 갖다 놓고 쳤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다. 골프 규칙대로 라면 1벌타를 받고 직후방에서 쳐야 하지만, 그 프로는 100m나 앞에 가서 볼을 놓고 쳤고 버디를 잡았다며 좋아했다. 이처럼 룰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그 프로의 모습을 몇 차례 보면서 이 대표는 2명의 다른 동반자를 대신해 항의했다. 그 프로가 반성은 고사하고, 얼버무리려 하자 이 대표는 “같이 못 치겠다”며 라운드를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갔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연습장에서 레슨을 하던 그 프로는 제주를 떠났다.
이 대표는 “많은 사람과 라운드를 하지만 꼭 같이 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다”며 “골프는 동반자와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비록 여성이지만 같이 치고 싶어하는 동반자들이 많다. 골프에서 함께 할 동반자를 모으는 능력도 ‘성공한 골퍼’로서 덕목 중 하나. 이 대표는 “티 타임을 한두 시간을 남겨두고 있다고 해도 두 팀 정도는 전화로 바로 모을 수 있다”고 웃었다.
제주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