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가 치솟으며 각종 화제를 생산하고 있다. 영국 BBC는 이 열풍을 보도하며 “한국의 군대 로맨스가 아시아를 휩쓸고 있다”고 했다.
열풍의 배경에는 송중기라는 걸출한 한류 스타가 있다. 극 중 유시진 대위 역을 맡은 그가 펼치는 연애 판타지에 여성 팬들이 환호했다. 극이 진행되면서 판타지는 사랑 이야기를 넘어 휴먼 드라마로 확장한다. 이것이 남성 팬들까지 끌어들인 비결이다. 재난 속에서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군인과 의사들의 모습. “누구나 그래야 하는 줄 알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들의 행보가 최고의 판타지인 것 같다.” 극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말이다.
이 드라마의 원작 스토리는 의사들의 해외 봉사 활동을 담은 것이었다. 김 작가는 여기에 군대 이야기를 넣어서 극을 풍성하게 재창조했다. 극 중 유시진 대위는 사랑하는 여인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군(軍)의 부름에 망설임 없이 응하는 인물이다. 그의 대사 중 한 대목. “군인은 늘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가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그런 각오라면 매 순간 명예롭다.”
일부 지식인은 이 드라마에 국가주의가 배어 있다고 비판을 한다. 해외 파병 현장에서 군인과 의사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대목 등이 그 근거다. 국가주의는 국가라는 조직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통제받아야 한다는 사상이다. 나치즘, 파시즘은 극단적 국가주의의 사례다.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에서 우리 국기에 경애를 표하는 것이 왜 국가주의로 비판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유 대위는 극 중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가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이게 어찌 국가주의가 될까. 국가관이 투철하면 국가주의자인가. 비뚜름한 좌파적 시각에서 게정 부리는 것일 뿐이다.
이 드라마에 죄가 있다면, 극 중 인물의 판타지에서 깨어나 우리 현실을 대하면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공적 임무에 목숨을 거는 유 대위와 같은 인물을 공공 영역에서 찾기 힘들어서다. 특히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었던 공천 과정을 거쳐 등장한 20대 총선 후보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후보 944명 중 143명(16.9%)이 병역 면제를 받았다. 일반 국민 면제율(2.2%)의 7.7배나 된다. 저들의 면제율이 왜 저렇게 높은지는 불문가지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국회의원을 흔히 ‘선량(選良)’이라고 불렀다. 가려서 뽑은 훌륭한 인재라는 뜻이다. 이제 그렇게 부르는 일은 드물다. 옛 말투여서이기도 하겠으나, 의원들의 이미지가 나쁜 탓일 것이다. 선거 축제를 치르는 국민의 표정에서 도무지 신명을 찾아볼 수 없다. 매력적인 선량을 내 손으로 뽑아 쓴다는 선발거용(選拔擧用·선거의 본딧말)의 판타지가 없기 때문이다. 당내 심판으로 ‘컷 오프’ 된 막말꾼들이 패거리를 모아 계속 설쳐대는 판에 무슨 판타지가 있겠는가.
물론 정치인이 고매한 인격자일 필요는 없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설파한 것처럼, 공동체의 과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결함으로써 국민을 잘살게 하는 능력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판에서는 사익과 패거리 정치를 구현하는 데 능력을 발휘하는 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어질병을 앓으면서도 유권자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써 따져보게 된다.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경제와 안보 위기에 대해 실효성 있는 공약을 내놓은 정당과 후보가 누구인지를.
총선 드라마는 이제 2주도 남지 않았다. 이 결과가 대한민국의 4년을 좌우한다. ‘태양의 후예’ 판타지를 구현한 유시진 대위처럼 공적 소명의식으로 뭉친 선량을 바라진 않는다. 국가와 지역의 난제를 척척 해결해내는 능력자를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 공동체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며 분열을 꾀하는 선동가, 복지 천국을 금세 이룰 것처럼 떠드는 사기꾼들이 덜 뽑히기를 바랄 뿐이다. 시대착오적 ‘존영(尊影) 반납 논란’을 일으키며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는 아첨꾼, ‘연대’라는 이름으로 정치 공학적 술수를 부리거나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정치꾼들을 앞으로 덜 볼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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