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 / 정치부 부장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달 26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 이어 29일 위스콘신주 타운홀 미팅에서도 ‘한국과 일본 핵무장 허용’ 발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1일 핵안보정상회의에 맞춘 일종의 ‘북핵 마케팅’이다. 트럼프의 한·일 핵무장 허용 주장의 배경에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가 주도해온 핵무기 감축과 핵 비확산 정책을 통한 ‘핵무기 없는 세계질서 구축’이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을 통해 사실상 실패한 것임을 우회적으로 반격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부동산 재벌 출신 포퓰리스트 대선주자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외교·안보 구상이긴 하다. 상업적 안보마케팅에 의한 외교고립주의로 미 정가의 비판이 거세다. 하지만 트럼프가 제기한 ‘미국의 핵무기 정책 변경’ 촉구 주장을 무책임한 포퓰리즘으로 깡그리 무시하기에는 께름칙한 구석이 많다. 트럼프가 줄기차게 한국 안보 무임승차론을 안보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미국 내 여론의 지지를 일정 정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시해야 한다. 한·일 양국에 불어닥친 트럼프 발언의 후폭풍이 의외로 거세다. 현재 당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만약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보다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보수진영도 때를 놓치지 않고 기세를 올리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파키스탄·중국도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고, 이란도 10년 내에 핵무기를 가질 것”이라며 “일정 시점에 한·일이 북한의 미치광이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면 미국의 입장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세계적인 핵확산 문제를 직시하고 현실적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폴 브래큰 예일대 교수는 저서 ‘제2차 핵시대’에서 “세계적인 핵무기 확산 배경에는, 미국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면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억지하는 수단으로 핵폭탄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브래큰 교수는 심지어 “일본이 독자적인 핵 억지력을 확보하면, 미국이 떠맡아야 할 안보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며 “중국의 핵 현대화를 포함한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 앞에서 미국이 일본에 재래식 국방을 약속한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15년 4월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은 핵 비확산 전문가 그룹에 비공개로 회람한 ‘한국이 어떻게 핵무기를 획득하고 배치할 수 있는가’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이 핵무장에 나설 경우 미국이 밀실에서 한국의 핵무장화를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올해 여론조사에서 한국민 52∼54%가 핵무장을 지지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한국의 핵무기 개발에 드는 비용은 1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며 “한국이 핵무장을 결정하게 되면 현재의 고비용 저효율의 국방정책을 저비용 고효율의 국방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트럼프의 주장처럼 핵무기 없는 세계질서 구축이 실패할 경우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csjung@munhwa.com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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