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난민 /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 이언숙 옮김 / 민음사

“세상은 젊은이에게 꿈을 꾸라고 하지만 모두가 꿈을 이루는 건 불가능해. 성공한 표준 인생, 사회 정의니 평화 같은 대의보다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훨씬 행복할 수 있잖아. 그러니 젊은이들이 불가능한 꿈을 꾸지 않도록 우리를 단념시켜 줘.”

일본의 도발적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31) 게이오(慶應)대 연구원이 2000년에 출간해 논쟁을 일으킨 ‘희망 난민’의 결론이다. 슬프고 아프다. 돈도 출세도 관심 없고 불확실한 미래보다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는 사토리(覺り)세대를 분석해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은 ‘절망의 나라에서 행복한 젊은이들’보다 1년 먼저 나온 ‘전작’으로 나온 지 6년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 젊은 세대의 고민과 문제들을 거울처럼 비춰낸다.

“꿈을 좇는 건 젊은이의 특권?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꿈만 좇다가 피폐해진 30대를 가정해보자. 뭐라고, 그건 자기 책임이라고?”(p14) 이 가상의 30대가 현실과 희망의 격차로 고통스러워하는 ‘희망 난민’이다. 저자는 일본에서(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희망 난민들이 늘고 있다며 가장 큰 이유로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의 붕괴를 꼽는다. 신분·가문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스템인 메리토크라시. 쉽게 말해 노력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그러면 좋은 인생이 보장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도쿄(東京)대 = 출세’라는 등식이 깨졌고 좋은 학교에 입학해도 좋은 회사에 들어간다는 보장이 사라졌다. 동시에 모두가 좋은 회사에 취직하거나 성공하는 것이 꼭 좋은 인생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반면에 기존 성공 경쟁의 바깥에는 눈부신 꿈들이 널려 있다. 학력에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는 창업가, 아이돌, 댄서, 성우, 만화가 같은 직업은 높은 학력을 요구하는 박사나 관료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이런 변화에는 거품경제 붕괴, 경제불황, 청년 실업 등이 작용했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후기 근대사회에서 개인 역시 자신을 끝없이 변하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모두 ‘자기 찾기’에 빠진 결과이다. 이런 세상에서 꿈을 좇으라는 메시지는 넘쳐나고 꿈만 좇는 젊은 희망 난민들은 경제적 빈곤과 외로움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받게 됐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개인을 인정하고 승인해주는 커뮤니티를 답으로 제시한다. 저자가 2008년 국제 비정부기구(NGO) 단체 피스보트(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세계 일주 크루즈)를 타고 114일간 젊은이 300여 명과 항해하며 이들을 분석한 결론이다. 책의 절반가량이 할애된 피스보트 부분을 요약하면 젊은이들은 피스보트에서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는 안식처로서의 커뮤니티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꿈을 ‘단념’했다. 평화헌법 수호, 환경, 반전 등을 주장하는 피스보트에 올라 관련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뒤엔 대부분 이에 대한 관심을 끊고 커뮤니티가 준 충족감을 바탕으로 소소한 자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개인들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커뮤니티에서 승인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지나친 희망을 버리고 ‘해피’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연대나 공동체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기대와 상반된다. 저자 역시 커뮤니티가 사회적 변화를 만들지 못하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기 삶에 안주하게 함으로써 노동시장이나 체제 전체로 볼 때 장기판의 유용한 말이 되게 하는 한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예상된 비판에 대한 저자의 반응은 뜻밖이다. “장기판의 말이 되면 어때? 사다리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아무런 힌트도 없이 내던져져 ‘하면 된다’고 재촉받는 것보다 좋은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옳으냐 그르냐, 찬성이냐 반대냐를 떠나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자기 세대론이다. 왜 스스로 바꾸려 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일단 후순위로 넘기고 꿈을 꾸지 않겠다가 아니라 꿈을 꿀 수 없어 아프다는 이야기로, 헛된 꿈에 인생을 걸라고 하기에 앞서 희망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는 외침으로 듣고 싶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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