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상품’ ISA 실적에 촉각
은행·증권사 출혈경쟁 양상
1만원‘무늬만 가입’ 많은데
당국“불완전판매 없다”주장
계좌이동 5개월간 300만건
‘붕어빵 서비스’ 실효성 적어
지난달 14일 출시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가입 계좌 수가 보름 만에 120만 개에 달하고, 계좌이동제에 따른 계좌 변경 건수가 지난 5개월간 300만 건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회사 간 경쟁을 촉진시켜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계좌이동제와 ISA가 시장 초기에 소비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으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건전한 경쟁 차원을 넘어선 과도한 실적·출혈 경쟁 양상이 나타나면서 1만 원짜리 ‘깡통계좌’ 논란이 불거졌고, 실제 평균 가입금액도 아무리 제도 도입 초기라고는 하지만 55만 원에 그치고 있다.
4일 금융위원회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ISA 상품 출시 후 15일(3월 14∼31일)간 가입 계좌 수는 120만 계좌, 금액은 6550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은행권이 91.5%를 차지했으며 증권사는 8.4%에 그쳤다. 가입 금액 기준으로는 은행과 증권사가 각각 56.8%, 43.1%를 차지해 증권이 크게 밀리지 않았다. 가입자가 계좌에 담을 상품을 직접 선택하는 신탁형 비중이 98.7%로 일임형을 압도했다. 1인당 평균 가입금액은 은행이 34만 원, 증권 279만 원 등으로 55만 원이었다. ISA는 하나의 통장 안에 예·적금,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담아 운용할 수 있으며, 납부 한도는 연간 2000만 원, 의무가입기간은 3∼5년이다. 계좌에서 발생한 이익과 손실을 통산해 순소득 200만 원까지는 비과세, 초과분에 대해서는 9.9% 분리과세된다.
지난해 10월 30일부터 시행된 계좌이동제의 경우 지난달 31일까지 5개월간 계좌 조회는 362만4000건, 변경은 306만4000건이 이뤄졌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경쟁 확산과 상품 및 서비스 차별화를 통한 소비자 편익 제고를 위해 계좌이동제와 ISA를 도입했다. 하지만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도 도입 초기에 따른 혼란이 적지 않은데다 과당·출혈경쟁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은행과 증권사들이 직원들에게 가입 계좌 할당량을 부과하면서 1만 원짜리 ‘깡통계좌’가 양산되고 “일단 가입부터 하고 보시라”는 직원들의 ‘묻지마 식’ 가입 종용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은행 점포에서 만난 은행원은 “실적을 계속 강요받고 있어 어떤 고객이 오더라도 ISA 가입을 권유하게 된다”면서 “끼워팔기 상품으로 ISA 가입을 시키다 보니 구체적인 상품 설명은 건너뛰고 가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현장에서는 사실상 ‘불완전 판매’에 가까운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데도 금융당국은 팔짱을 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개혁의 ‘아이콘’처럼 되어버린 ISA 실적을 의식해 적극적인 실태 조사 없이 “지금까지 불완전 판매는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제도 운용 과정에서의 금융사의 자율성 결여를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금융당국이 매일 매일 가입 실적을 체크하며 ‘흥행’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차별화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단기 실적 경쟁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계좌이동제의 경우도 은행별로 ‘계좌이동제 특화 주거래 상품’을 쏟아내고 있지만, 비슷비슷한 금리·수수료 혜택 등으로 차별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소득이 빠듯한 서민들이 5년간 자금이 묶여있는 ISA 계좌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월 소득 150만 원 미만 가구의 44.8%, 월 소득 150만∼300만 원 미만 가구의 25.3%가 적자 가구다. ISA를 통한 재산 불리기 혜택이 주로 고소득층에 돌아가고 서민들은 금융사들의 ‘봉’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이 금융개혁 성과를 의식해 너무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며 “불완전 판매와 과당 경쟁에 대한 잣대를 엄정하게 휘둘러 시장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충남·박정경 기자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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