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전문의가 중환자실에 상주해 관리할 경우 환자의 생존율이 크게 높아진다. 국내 주요 대학병원에는 중환자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지만 중소형병원은 전문의를 별도로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중환자 전문의가 중환자실에 상주해 관리할 경우 환자의 생존율이 크게 높아진다. 국내 주요 대학병원에는 중환자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지만 중소형병원은 전문의를 별도로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국내 중환자실 실태·개선점

병원들, 수익성 낮다는 이유 담당의사 1명 전담배치 꺼려

자격 규정도 명확하지 않아 중환자의학 전공안해도 가능

2009년 신종플루 사망률 韓 33% vs 佛 16·美 7%

생명연장·의료비 절감위해 전담醫 제도 대폭 확대 절실


#70대 남성 A 씨는 갑작스러운 심장 발작으로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긴급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로 옮겼다. 심장 전문의의 신속한 수술로 심장문제는 해결됐지만, 고령의 나이 탓에 폐렴 등 갖가지 나쁜 상황이 반복되면서 중환자실에서 여러 번 고비를 넘겼다. A 씨는 퇴원 후 중환자실에 상주하는 중환자 전문의가 위기 상황 때마다 적절히 관리해 회복됐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중환자 전문의가 모든 병원에 상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돼 놀랐다.

중환자는 급성 중증 환자를 말한다. 중환자의학은 이런 환자들을 모아서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치료하는 분야다. 즉 중환자실(intensive care unit)은 병원 내에서 환자 생명과 가장 밀접한 공간이고 진료의 성과가 드라마틱하게 나온다는 점에서 첨단 장비와 숙련된 의료진에 의한 집중 진료가 요구되는 곳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중환자실을 응급실과 혼동하거나, 임종 전 마지막에 들르는 ‘희망이 없는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낮은 관심과 달리 중환자실의 환자 수는 급속한 고령화 탓에 최근 5년간 20% 늘어나는 등 증가 추세다. 국내 중환자실의 실태와 개선사항 등을 국내 중환자 전문의 1세대 이영주 이화여대목동병원 중환자실장의 도움을 얻어 점검했다.

◇각종 상황에 대처하는 중환자의학=중환자실은 내·외과를 막론하고 전신 관리를 필요로 하며,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수용해 집중적으로 치료 간호하는 병동을 말한다. 집중치료실이라고도 한다. 대상은 중증 외상 환자를 비롯해 급성 의식 장애 또는 혼수, 급성 호흡 부전 환자 등 다양하다. 중환자실에는 구급소생장치 등 각종 장비가 설치돼 있으며, 병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형병원의 경우 보통 내과·외과·소아과·신경과·신생아과 등 유닛별로 구분해 4∼6개의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실장은 “중환자 치료는 하나의 특정과의 독자적인 분야가 아니다”며 “중환자 전문의는 패혈증·급성호흡곤란증후군 등의 치료는 물론 응급심폐소생술, 인공호흡, 영양 상태 평가, 약물 농도 및 부작용 감시 등 중환자실 안에서 이뤄지는 각종 상황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대응한다”고 말했다. 또 중환자실로 환자를 보내는 다양한 영역의 의료진과 의사소통하면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중환자실에 전담전문의를 두는 경우 환자의 사망률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아시아의 중환자실 실태를 조사한 ‘MOSAIC’ 연구에서는 중환자 전담전문의가 있을 때 사망률은 18%, 없을 때는 42%를 기록했다. 중환자의학회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A(H1N1) 유행 당시 중환자실 사망률을 분석한 조사에서도 전담전문의가 있었던 의료기관은 27%, 전문의가 없었던 의료기관은 50%로 2배 가까이로 차이가 났다. 또 캐나다의 연구에서도 10년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의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중증 질환자가 중환자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은 주말에 입원한 경우 주중에 입원한 경우보다 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환자 전문의 부족한 국내 중환자실=우리나라는 중환자실에 대한 관심도 낮지만, 더 심각한 것은 중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다. 중환자는 하루 24시간 중 언제라도 상태가 급격히 악화할 수 있어 이를 조기에 발견해 골든타임 안에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지만, 중환자실 전담전문의가 24시간 상주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중환자실 전담전문의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2015년부터 상급종합병원은 1명의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배치가 의무화됐으나 일반 종합병원 등 다른 병원들은 중환자 전문의 배치 의무가 없다. 수익성이 낮아 병원 운영 면에서 의사 1명을 전담 배치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에도 중환자 전문의 배치를 의무화했지만, 중환자 전담전문의의 자격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중환자 전문의가 아니라 전문의 자격증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이 실장은 “중환자 전문의는 세부 전문과정을 통해 패혈증 등 각종 상황에 대해 치료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점검하고 대응한다”며 “그러나 중환자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전문의들은 자기 전공 분야 외의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약 1400명의 세부 중환자 전문의가 있지만, 중환자 전담전문의로 근무하기보다는 대부분 자신의 주전공 진료를 보고 있다. 또 대형병원은 대부분 4∼6유닛의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있어 1명의 전담전문의가 중환자실의 모든 중환자를 관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탓에 대부분 중환자실 환자들은 수련 중인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에 의해 관리되는 게 국내 현실이다. 가정이지만 패혈증으로 사망한 신해철 씨도 중환자 전담전문의가 있는 곳에서 수술 후 관리를 받았다면 살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 중환자의학계 평가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나타난다. 2009년 신종 플루 유행 당시 중환자실 사망률을 비교한 결과 전담전문의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환자 사망률은 33%에 달해 중환자 전담전문의를 두고 있는 프랑스 16.7%·호주 16.9%·미국 7% 등과 차이가 났다. 이 실장은 “우리나라는 중환자 진료를 위해 전체 의료비의 4분의 1을 사용하지만, 퇴원 1개월 내 누적사망률이 44.9%에 달할 만큼 높다”며 “중환자 진료 수준을 높이는 것은 환자의 생명 연장뿐 아니라 의료비 절감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환자 치료의 질을 높이고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중환자 전담전문의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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