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정부 ‘푸시킨 메달’ 받은 성악가 이연성
베이스 이연성은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하거나 해외 유수의 연주단체에 입단해 이름을 알린 성악가가 아니다. 러시아에서 성악을 공부한 그는 국내에 러시아 음악을 알리며 한국과 러시아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월에는 국내 음악인 최초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국가 훈장인 ‘푸시킨 메달’(문화예술훈장)을 받았다. 러시아 최고 문인으로 추앙받는 알렉산드르 푸시킨 탄생 200주년을 맞은 1999년 제정된 이 훈장은 러시아 정부가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세계적인 공적을 쌓은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주는 상으로, 한국인 중 10번째로 그가 수상했다. 그는 또 2013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푸시킨 동상 제막식에서 러시아 국민 애창곡인 ‘그대를 사랑했소’를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단장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한국에서 러시아 음악을 소개하며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며 “러시아 정부에서 내게 상을 준 것은 외로운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한다”고 푸시킨 메달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매년 11월 수상자를 모스크바 크렘린궁으로 불러 대통령이 직접 푸시킨 메달을 수여하는데 지난해 11월에 러시아 여객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나 행사를 열지 않았다”며 “그래서 시간이 많이 지난 후 러시아 외교의 날에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시상식이 열렸고, 우리 정부 관계자들과 외국 대사들도 오셔서 축하해줬다”고 소개했다. 또 “푸틴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옆에 있던 대통령 의전 담당관이 내 노래를 듣고 감동했다며 지금도 모스크바에서 공연을 하면 꼭 온다”며 “외교적 성취감에 대한 보람도 크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이 단장이 러시아 음악과 사랑에 빠진 건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부터다.
“1984년 서울신학대를 졸업하고 교회음악가가 되려고 했어요. 그러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며 국내에 러시아 문화가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때 러시아 민요를 처음 듣고 감동한 후 러시아 음악에 빠져들었어요. 1970년대에 가수 이연실이 번안해 불렀던 ‘스텐카라진’이란 곡이에요. ‘넘쳐 넘쳐 흘러가는 볼가강 물 위에서…’라는 가사가 마음에 들어왔어요.”
그렇게 러시아 민요를 가슴에 품은 그는 군 제대 후 1995년 7월에 러시아 유학길에 올랐지만 입학사기를 당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부모님이 반대했고, 주변에 러시아에 대해 아는 분이 없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거제도에서 열린 음악회 뒤풀이 자리에서 옆에 앉은 분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도움을 받게 됐어요. 그분이 ‘앞으로 뭐 할 거냐’고 묻길래 ‘러시아에 가서 성악을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더니 ‘내가 아는 선생님이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있다’며 연결해 줬어요. 그분이 학교를 소개해 줘서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학생에게 러시아어 읽는 법을 두 달 정도 배운 후 무작정 러시아로 갔죠. 근데 소개해준 분이 거짓말을 한 거였어요. 처음 얘기한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더라고요.”
그래도 러시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한국인이 적은 다른 도시로 갔지만 고생의 연속이었다.
“모스크바에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 러시아어를 배울 기회가 안 생겼어요. 학교도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말이라도 빨리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우파라는 도시로 갔어요. 우파는 콩쿠르 구경 갔다가 알게 된 도시인데 한국인이 별로 없어서 러시아어를 배우기 좋았어요. 하지만 거주 등록을 해야 한다고 해서 모스크바로 다시 갔죠. 우파에서 모스크바까지 한 칸에 4명이 자야 하는 기차로 37시간이나 걸려요. 그렇게 두 도시를 몇 차례 다니다가 기차역에서 강도도 당했어요. 근데 강도가 하는 말을 제가 못 알아들으니까 푼돈만 가져가더라고요(웃음).”
그렇게 1년여 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한 이 단장은 이를 악물고 노력하며 러시아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시간을 허비하며 마음이 조급해졌는데 사기를 당한 일이 전화위복이 됐어요. 그네신 음악아카데미에서 1년을 공부하다 지도교수가 시리아 교환교수로 가는 바람에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옮기게 됐어요. 러시아어를 충분히 공부할 시간을 벌어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어요. 당시 그 학교에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 40명 정도였는데 제가 러시아어를 잘하는 축에 들었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러시아 노래를 원어로 배우며 본토 사람들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닥치는대로 콩쿠르에 참가했어요. 그러면서 러시아 음악계 인사들도 알게 됐죠.”
악전고투를 하며 버틴 그는 1999년 자신의 인생에 꽃을 피웠다.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동양인 최초로 모스크바 국립 스타니슬라브스키 오페라 발레 극장 정규 단원으로 입단했다.
“그해에 푸시킨 탄생 200주년을 맞아 콩쿠르가 많이 열렸어요. 5월에 푸시킨 콩쿠르에 입상했고, 6월에는 벨라보체 그랑프리에서 상을 받았어요. 또 7월에 모스크바 국립 스타니슬라브스키 오페라 발레 극장 정규 단원이 됐고, 10월에는 글린카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어요. 이 콩쿠르는 모스크바에서 14시간 떨어진 카잔이라는 도시에서 열렸는데 그 긴 거리를 비행기와 기차를 갈아타며 몇 차례 다녀왔어요.”
오페라 극장 단원으로 활동하며 러시아에 정착한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러시아 경제 상황이 매우 안 좋았어요. 제 월급이 170달러였는데 집 월세가 300달러여서 생활을 할 수 없었어요. 러시아 단원들은 극장에서 집을 제공하는데 저는 외국인이라 혜택을 받지 못했죠. 자국 음악인을 보호하기 위해 극장에서 외국인 단원을 고용하면 세금을 내야 했어요. 그렇게 3년을 일하며 마이너스 생활을 했죠. 극장에 적을 둔 채로 짐도 그대로 놔두고 한국에 왔다가 오페라 무대에 4번 올랐는데 출연료가 러시아에서 받던 월급의 20배였어요. 돈의 논리 앞에서 무너져 한국에 눌러앉았어요. 러시아에서 함께 공부한 선배가 ‘한국에서 러시아 음악 하면 먹고 살기 힘들다’며 다른 일을 찾으라고 했지만 저는 러시아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지금은 러시아 음악을 즐기는 마니아층이 형성됐고, 초청 공연도 많아졌어요.”
이 단장은 여러 차례 청와대 국빈 행사에 참여하는 등 한국과 러시아의 외교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행사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왔을 때 처음 청와대에서 저를 초청했어요. 그 후 우즈베키스탄 등 러시아권 대통령이 오면 저를 불렀어요. 2012년에는 크렘린궁에서 공연을 했고요. 거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두 배인 6000석 규모예요. 출연자가 30명이었는데 한국인은 제가 유일했어요. 그때 위성락 주러시아 한국대사가 오셨는데 진행자가 ‘한국 성악가를 응원하기 위해 대사가 오셨다’고 말해 기분이 좋았어요. 보통 이런 일은 성악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음악으로 여러 나라를 연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조청연 씨와 독일에서 유학한 김대엽 씨와 함께 연주팀 ‘3베이스’를 만들었어요. 앞으로 한국에 와있는 대사들을 초청해 각 나라 대표 민요를 부르는 공연을 열 계획이에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마다 ‘오뚝이’ 같은 뚝심으로 다시 일어선 그는 “힘든 순간을 빨리 지나치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항상 제게 닥친 어려움을 빨리 이겨내려 했어요.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처음 러시아에 갔을 때는 비자 받기도 힘들었는데 남의 말에 속아서 학교도 못 들어가니 암담했죠. 거기다 말도 안 통하는데 여기저기 오락가락하며 ‘이 상황을 탈출하자’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도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러시아 음악이 있어 버틸 수 있었죠. 제가 처음 러시아에 갈 때 한 선배가 ‘왜 가느냐’고 물었어요. 그때는 대답을 못 했는데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러시아 음악이 있기 때문에 간다고요.”
요즘은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고, 러시아에서 열리는 여러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이 단장은 한국과 러시아를 무대로 활동하는 공연 기획자를 꿈꾸고 있다.
“저를 지도해 주신 류드밀라 남 선생님이 ‘이연성 너는 극장장이 될 거야’라고 말해 주셨어요. 한국에서는 극장이 공간 개념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과 솔리스트, 발레 무용수, 연극배우, 공연 기획자, 무대·의상 스태프 등 극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극장’이라고 불러요. 극장장은 예술감독을 말하는 거고요. 지금은 저 혼자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지만 앞으로 러시아 공연단을 한국에 부르고, 한국 공연단을 이끌고 러시아에서 공연하는 기획일을 할 계획이에요. 또 한국 음악과 러시아 음악을 접목하는 일도 계속할 거고요.”
인터뷰 = 김구철 부장 (문화부)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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