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스승 -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꽃, 나무와 같은 작은 사물에서 큰 의미를 찾아내는 법을 연습하라.’

문효치(73·사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 1957년 서울 마포구 환일중 재학 시절 이병일 교사로부터 배운 시 창작 기법의 하나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운현궁 인근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문 이사장은 “당시 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 법을 터득했고 이후 60년 가까이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이 선생님을 비롯한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문 이사장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삼촌이 방학기간에 놓고 간 시집을 보며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시인이나 소설가와 같은 문인이 되는지, 좋은 시와 소설을 쓸 수 있는지를 배울 길은 없었다. 그런 문 이사장에게 초·중·고교 국어 수업 시간은 시와 소설을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그는 “학교에 가면 국어 수업 시간만 손꼽아 기다렸고 국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문 이사장은 “‘자연, 인생과 같은 큰 주제를 잡고 대단한 시를 쓰려고 해서는 시를 잘 쓸 수 없다’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등의 이 선생님의 가르침이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며 특히 이병일 교사와의 수업을 어제 일처럼 회상했다.

이 교사는 문 이사장이 문인의 꿈을 품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문 이사장의 시 작품이 교지에 실리면 학생들 앞에서 직접 소리를 내 읽어주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문 이사장은 이 교사의 격려를 바탕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문인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동국대 국문학과에 진학한 후 1966년 서울신문과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문 이사장은 이 교사 외에도 전북 군산의 옥산초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았던 문현식 교사도 인생에 영향을 미친 선생님으로 꼽았다. 문 이사장은 “문 선생님은 6·25전쟁 중 집안이 몰락해 늘 주눅이 들어 지내던 나에게 용기를 준 스승”이라고 설명했다.

문 이사장은 전쟁 중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마을 사람들과 학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등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문 교사는 문 이사장의 딱한 사정을 알고 방과후 자신의 자취방으로 문 이사장과 반 친구들을 불러 어울리게 했다.

문 이사장은 “선생님의 배려로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까불고 장난칠 수 있었다”며 “선생님은 힘든 학교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학교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 힘들었는지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당시 문 교사의 속 깊은 배려를 아직도 잊지 못했다.

문 이사장은 동국대 국문학과에 진학한 후에는 미당 서정주 시인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1년여 동안 서정주 시인의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문하생으로 생활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 시절 내내 서정주 선생님의 시를 흠모하고 따라 하면서 시인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며 “4년 동안 선생님과 술잔을 기울이고 가르침을 받으면서 시를 짓는 기쁨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서정주 시인은 자신의 집에서 공부하던 문하생이 좋은 작품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대문 앞까지 배웅하며 ‘대문 열어라, 시인 나가신다’고 크게 외쳤다. 서정주 시인만의 독특한 칭찬법은 제자들에게 힘이 됐다. 문 이사장은 “우러러보던 선생님이 통 큰 칭찬을 해주시는 날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신춘문예 등단 후 1971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 배재중·고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그는 “내가 학창 시절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나의 제자들도 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랐다”며 교사가 된 이유를 밝혔다.

그는 교사 재직 시절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문우회’라는 이름의 문예 동아리를 만들어 10여 년 동안 지도교사로 활동했다. 문 이사장은 문우회 소속 학생들과 작품 품평회도 하고 학생들의 우수한 작품들을 모아 잡지를 제작하기도 했다. 당시 문우회 활동을 했던 제자 중 일부는 등단해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 이사장은 배재중·고교에서 퇴직한 이후에도 동국대, 대전대, 추계예술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많은 문인을 길러냈다. 그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제자가 40명이 넘는다”며 “내가 길러낸 제자들이 시인이 되는 것이 기특해 지치는 줄도 모르고 가르쳤다”고 고백했다.

문 이사장은 요즘 학생들이 자신의 학창 시절처럼 학교에서 문학 등 순수예술을 공부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그는 “교사들이 이성적으로 뛰어난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만큼이나 감성적으로 훌륭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교육 환경이 개선돼 학생과 교사가 시를 읽고 토론하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사진 =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교권 회복과 아동이 행복한 환경 조성을 위해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