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 논설위원

북한 국방위원회가 3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군사적 압박보다 협상 마련이 근본 해결책”이라며 지난 3월 3일 유엔 대북 제재 결의 제2270호 채택 이후 처음으로 ‘협상’을 언급했다. 이같이 북한이 협상이란 단어를 꺼낸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담화문에는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가혹한 제재의 대명사였던 ‘레닌그라드 봉쇄’도 조선반도에 조성된 오늘의 정세에는 대비조차 할 수 없다”며, “제재의 마수는 우리가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모든 것의 곳곳에 깊숙이 뻗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레닌그라드 봉쇄란 제정 러시아 당시 수도였으며 현재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가 1941년 9월 8일에서 1944년 1월 27일까지 약 900일간 독일군에 의해 포위된 사건을 일컫는다. 이 기간에 약 300만 명이 총에 맞아 죽거나 굶어 죽었다. 당시 일반 주민 일일 식량 배급량은 300g이었는데, 이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형도 이때 아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 건국의 아버지’인 테렌티 포미치 시티코프 소련군 군정청 사령관이 그 당시 레닌그라드 전선 국방위원으로서 간첩색출·물자 배급·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 관리 책임을 맡았는데, 당시 성행하던 인육(人肉) 거래를 단속·처벌하는 것도 그의 주된 업무였다.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 중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원인을 시티코프의 ‘레닌그라드 포위 강박증’에서 찾는 러시아 학자들이 있다. 시티코프는 ‘인간 백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아사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인권이란 존재할 수 없었으며, 포위망 밖에는 모두 적이며, 조금이라도 동요하는 자는 이적 행위자로 여겨 처형했던 것이다. 이런 강박증 소유자인 시티코프가 만주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소련으로 도망온 김일성을 내세워 만든 것이 북한 정권이다.

사실 북한 현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레닌그라드 봉쇄에 대한 모욕이다. 시티코프 등 당시 레닌그라드 지도부는 가혹할 정도의 검박한 생활을 스스로에게 강제했다. 간부의 경우 조그만 사치도 즉결처분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김정은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운운하면서도 자본주의 재벌을 능가하는 호화생활을 영위하며, 김일성·김정일 호화무덤과 마식령 스키장 등에 막대한 외화를 쏟아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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