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 정치부 선임기자

‘주인과 대리인의 딜레마’는 종종 정치학이나 행정학의 주요 테마가 돼 왔다.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주인의 믿음에 반하는 불량행위를 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주인이 국민이라면 대리인은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쯤 될 것이다. 대리인들의 불량 행위사례에는 이익집단과의 유착, 성과에 대한 과장, 불로소득 추구, 재량 남용, 도덕적 해이, 부패, 권력 오·남용 등이 있다.

대리인이 주인을 속이는 이런 ‘실패’를 바로잡고 주인 즉 국민의 이익을 복원시키는 것을 정치·행정학에서는 ‘메커니즘 디자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불량 대리인 손보기다. 대리인을 통해 국민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정신으로 하는 대의(代議)제도 하에서 주인이 대리인을 손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불량 정치인들을 솎아내 대의기구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다. 이게 선거다.

주인의 손보기는 이미 시작됐다. 여당의 뜨락인 줄로만 알았던 대구 지역에서 벌어지는 선거 양상들은 불량 대리인에 대한 주인의 경고가 간단치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대구 전체 선거구의 절반 이상에서 비(非) 여권 혹은 반(反) 특정 정파 후보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정권심판론’ 구호가 떠오른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구 선거는 이번 4·13총선의 가장 흥미로운 메타포이자 미래 정치의 한 축도(縮圖)다.

정치란 게 참 묘한 것이어서 지역 민심은 상호 이전성을 갖는다. 한 지역의 민심 분화 기류는 다른 지역으로 옮아간다. 대구와는 전혀 다른 정치공간인 광주에서도 불량 대리인을 손보려는 주인의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오만한 일당독재와 일파(一派) 독점을 꾸짖는 민심이 철옹성 같았던 특정 계파의 순혈주의와 패권주의를 해체하고자 하는 유권자의 의지를 전달하고 있다.

국민은 이제 내 운명의 주인공이 나 자신이라는 깨달음을 실천하려는 찰나에 있다. ‘주인 됨’의 자각이 이번 총선에서 온전한 결말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불량 대리인들은 영악하고 저항은 강하다. 하지만 국민이 주인 됨을 자각하는 한 언젠가는 배타적 기득권에 안주해온 양당체제는 허물어지고, 발목 잡는 정치가 사라지며, 협치(協治)와 연대와 동맹의 모색을 통한 새로운 정치는 살아날 것이다. 또 ‘동과 서, 그 둘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키플링의 예언은 사라지고, 분열과 파당성을 한국 정치의 내재적 지배원리로 보는 기원론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자신에게 묻고 답해야 한다. “나는 정치의 주인인가…그렇다!” 인류가 고안해낸 최고의 정치체제라는 대의제도는 불량 대리인의 출현이라는 한계를 내보이지만 민주주의적 제도와 절차에 따른 복원력 또한 제공한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정치를 바로잡고 엉망인 국정을 바로 세우며 허물어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복구하는 것은 선거의 힘이다. 선거는 축제이자 향연(饗宴)이다. 그것은 참여하지 않고서는 환희에 이를 수 없는 축제이자, 숙취(熟醉)하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는 바쿠스의 향연이다.

minski@munhwa.com
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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