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로 읽는 미술사 / 정장진 지음/미메시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모네의 ‘수련’을 거쳐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마망’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의 위대한 예술 작품이 자본주의의 꽃, 광고에 어떻게 사용·차용·변용됐는지 보여준다. 나란히 배치한 명작과 광고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 것만으로도 책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의 8할은 했다. 명작의 아우라에 기댄 채 원작의 어떤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왔고, 어떤 이미지를 비틀었고, 어떤 이미지를 더했는지를 보면 (이 광고 작업의 최종 목표는 얼마나 많은 상품을 파는가이지만) 우리 시대가 주목하고, 갖고 싶고, 열망하는 그 모든 욕망의 정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에서 가장 많이 활용·패러디된 작품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모나리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알프스 산을 넘는 나폴레옹’, 빈번하게 등장한 화가는 고흐,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 그린 자화상으로 등장하는 고흐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리바이스, 캘빈 클라인 등 청바지 광고의 단골 모델이며 ‘시스티나 성모’의 천사는 국내 분유통에 등장해 젊은 엄마들에게 천사 같은 아이 이미지를 호소한다.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루커스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에서 아담이 이브에게 건네는 사과를 아이폰으로 바꾼 그림을 표지로 사용해 애플 열풍을 전하기도 했다. 크리스챤 디올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가져와 그림 속 등장 인물들을 모두 현대적이고 세련된 여성 모델로 바꿈으로써 이제 명품은 남자가 사 주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직접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하고 있다.
이렇게 광고와 미술을 오가는 저자는 “순수예술은 없다”고 말한다. “예술은 처음부터 상업적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보티첼리가 살던 시대엔 미디어가 그림이나 조각밖에 없었을 뿐이었고, 도미니크 앵그르도 사진이 나오기 전 부잣집 여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줬기에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앤디 워홀이 이끈 팝아트에서 볼 수 있듯이 대중 예술과 대량 생산된 상품에서 창작 모티브를 가져온 지 오래 됐고 요즘 ‘가장 잘 나가는 화가’ 제프 쿤스가 BMW 아트카 제작에 참여했듯이 많은 예술가들이 직접 상품 디자인과 마케팅에 참여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미술은 이제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유물이 아니고 입고 다니는 옷에도, 먹는 요리에도, 들고 다니는 가방에도 들어왔으니 미술에서 대중, 상업, 돈, 자본 같은 요소들을 떼어낼 수 없다. 게다가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미술품 가격과 투자 품목으로 거래되는 현대 미술을 보면 순수 예술은 멸종한 듯하다. 이제 이미지들은 더욱 더 격렬하게 미술, 광고, 영화와 일상을 넘나들고 뒤섞인다. ‘광고로 읽는 미술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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