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진, Fire-Motion, 캔버스 위에 오일, 162.2×112.1㎝, 2015
정일진, Fire-Motion, 캔버스 위에 오일, 162.2×112.1㎝, 2015
유백색의 강렬한 불꽃을 중심으로 노랑, 주황, 진홍, 빨강으로 변하면서 비단결 같은 선이 너울대는 거대한 불길을 보고 있으면 무아의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빠져 봤을 감정이다. 이런 감흥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정일진의 불 그림이다. 여기엔 감상 같은 것이 끼어들 여지가 추호도 없다. 불을 상징하는 상투적인 수사나 은유도 없다. 직접 불 앞에 서 있는 느낌만 있다. 화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그런데 그의 사실적 불 그림에서는 추상성이 강하게 보인다. 불길을 추상적 이미지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물체를 태워서 화기와 에너지로 변하는 물리적 성질을 담으려 했다면 장작불 같은 사실적 분위기를 고수했을 것이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던 작가는 불의 물리적 성질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불꽃을 추상적 이미지로 발전시켰다. 불길과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 느꼈던 순수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거기서 작가는 세상을 이루는 기본 요소를 본 것이다.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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