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의 국가 대개혁 프로젝트인 ‘화성(華城) 축성’이 220주년을 맞았다. 수원 화성은 당대의 실학정신과 미학, 혁신적 과학기술이 집약된 계획 신도시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화성성역(城役)의궤’에는 성곽의 설계도, 각종 공문서, 경비와 물품 등 건설의 전(全)과정이 기록돼 있다. 의궤 덕택에 완벽하게 복원된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며칠 전 서울대 규장각 열람실을 방문해 화성의궤 복사본을 들추다가 축조에 동원된 석수와 목수, 미장이 등 22가지 직종의 일꾼들이 기록된 데 놀랐다. ‘고돌쇠(高乭金)’ ‘김작은놈(金子斤老味)’ ‘김개놈(金介老味)’ ‘강소똥(姜小同)’ 등의 이름과 근무 일수가 빠짐없이 기록돼 있었다. 신분을 구별하지 않은 장인 우대 정책과 공사 실명제 덕에 당초 10년으로 계획됐던 화성 축성 기간을 33개월로 단축할 수 있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다산 정약용이 창의적 과학 정신으로 설계한 거중기 도면과 부품 그림도 있다. 3중으로 출입이 통제된 규장각 서고(書庫) 속에서 전달되는 조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규장각’은 정조대왕의 개혁 정치 산실이었다. 오늘날의 서울대 규장각은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옛 규장각 도서와 ‘대동여지도’ 등 30만 점의 전적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화성의궤와 함께 규장각(1776년) 창립 240주년인 올해 다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유산이 승정원일기다. 국왕 비서실인 승정원이 빠르게 기록한 그대로, 각종 관서의 보고와 왕의 비답, 회의, 상소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지금은 288년 분량만 남아 있지만, 3243책에 글자 수로 2억2650만 자다.
번역에는 앞으로도 45년 정도가 더 걸린다. 완역되면 조선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500년 매일 매일의 국정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록문화의 정화(精華)다. 박근혜 대통령도 11일 “우리 고유문화를 찾아 세계 속의 문화 강국을 이뤄가야 한다”고 말했다. 빅데이터의 원천인 화성의궤와 승정원일기 등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고, 다르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승정원일기 번역 예산과 규장각의 정규직 모사본 제작 인력을 늘릴 필요가 있다. 새로 닻을 올릴 제20대 국회도 전통 기록문화유산과 빅데이터의 융합을 위한 제도 개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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