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단원 17명 중 12명이 서명했어요. 남은 다섯은 그냥 놔뒀어요.”
안미나의 목소리는 밝다. 남은 다섯은 신임 감독이 된 윤상희와 조연급 둘, 엑스트라 단원 둘이다. 극단 ‘사람’은 해체된 것이나 같다. 다리에 힘이 빠졌으므로 이미연은 민원상담실 앞쪽의 벤치에 앉았다. 오후 2시 반, 함께 경찰차를 타고 왔던 대부업체 조 과장과 부하는 변호사와 같이 10분쯤 전에 먼저 나갔다. 이미연이 그들을 가택 무단침입 혐의로 112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다시 안미나의 말이 이어졌다.
“조금 전에 이민기가 연기자 대표로 진정서를 갖고 유라시아그룹 기획실장을 만나러 갔어요.”
“…….”
“진정서 갖고 간다니까 놀라는 눈치더래요. 고 실장인가를 직접 만나러 갔어요.”
“혼자 갔어?”
“최정윤, 조수환하고요. 난 애들하고 카페에 남아 있어요.”
그때 이미연이 긴 숨을 뱉었다. 극단 ‘사람’의 한랜드 진출은 끝난 것이나 같다. 17명에서 12명이라니. 이민기, 안미나, 최정윤, 조수환이라면 모두 주연급이다. 안미나가 말했다.
“언니, 이 기회에 우리 극단 하나 다시 만들어요. 솔직히 전윤희 씨 돈도 없으면서 독단적으로 극단 운영하는 꼴을 더 이상 못보겠어요. 이것이 이번 기회에 터진 것이라고요.”
“…….”
“운좋게 호박이 굴러떨어지니까 다 제 공인 줄 알고 언니 자르고 혼자 생색내는 것 좀 봐요. 전윤희 씨가 유라시아그룹 쪽에다 선금으로 10억 요구한 것 아세요?”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이미연은 숨만 들이켰고 안미나가 말을 이었다.
“이민기가 전윤희 씨한테 전화했을 때 먼저 가불이 어쩌고 이야기를 꺼내더니 유라시아그룹에서 자금이 좀 나올 것 같다고 했다네요. 그래서 제가 그쪽에다 확인을 해봤죠. 그랬더니 떠나기 전에 10억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네요.”
“…….”
“이제 끝난 거죠. 그런데 그 돈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안 했군요, 나쁜 년.”
“얘, 그만.”
마침내 이미연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걘 돈 끌어오는 재주는 특별하잖니? 난 돈 빌려쓰다가 망한 경우에 들고.”
이번에는 안미나가 입을 다물었고 이미연이 말을 이었다.
“난 지금 경찰서 마당 벤치에 앉아서 전화를 하고 있어. 사채업자가 어제 내 집에 쳐들어와서 같이 잤단다, 글쎄.”
“…….”
“물론 그런 거 한 건 아니고.”
“…….”
“내가 오늘 오전에 112 신고를 해서 같이 경찰서로 온 거야. 지금 다 끝났지만 그놈들은 오늘 저녁에 또 온다는구나. 이젠 집 앞에서 돈 받기를 기다리겠대.”
“…….”
“사채업자 돈 빌려서 뭐 했냐고? 술 마시고 옷 사고 가방 샀어. 참, 비즈니스석 타고 방콕도 갔다 왔구나.”
“언니, 그만해요.”
“나하고 같이 잔 놈들한테서도 돈 빌려 썼어. 한 3천쯤 될 거야.”
그때 통화가 끊겼으므로 이미연이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었다. 모두 네 놈이다. 네 명과 자고 나서 돈을 빌렸다. 매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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