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이후 집권세력이 보여주는 모습은 선거 참패 자체보다 더 심각하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에 밀려 2위로 추락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도 취임 이후 최악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고, 새누리당은 국정을 책임진 집권당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리멸렬해 ‘오합지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다. 이미 국회 주도권을 장악한 야당 측에서는 쟁점 법안들에 대한 수정·반대 의사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박 대통령의 주요 국정에 대한 청문회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자칫 박 정부의 남은 22개월이 아무 일도 못하는 ‘식물정권’으로 전락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선거 이후 18일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겠다”면서 “20대 국회가 민생과 경제에 매진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정부도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당연한 원론이지만 국민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책임을 느끼기보다는 그동안 언급해왔던 ‘국회 심판론’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불통·독선’으로 비치던 박 대통령의 리더십도 변화해야 한다는 여론과 달리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야당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야당의 국회 안건 처리 강행과 대통령 거부권이 빈발하면서 국정은 한없이 표류할 수 있다.

새누리당의 모습 역시 집권당의 책임을 찾아볼 수 없다. 리더십 진공 상태라고 할 정도로 지휘관은 사후 수습을 팽개친 채 숨어버렸고, 책임져야 할 사람을 새로운 책임자로 지명할 정도로 뻔뻔스럽고, 친박과 비박은 서로 삿대질을 하고, 일반 당선자와 당원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에 참패했으면 패인을 제대로 찾아 청산하고, 새로운 비전과 진정성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면 된다. 집권당이라면 더욱 그런 ‘질서 있는 퇴각’이 중요하다.

문화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도가 27.2%로 더민주 29.3%에 밀렸다. 국민의당은 19.1%로 급등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 운영 평가는 취임 후 최저 수준이다. 새누리당의 참패 이유로는 ‘지도부 분열과 공천 갈등’ ‘대통령이 독선적 국정 운영’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 외에 책임 지려는 인사가 없고, 오히려 막후에서 당권 경쟁을 준비한다니 어이없다.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집권 세력은 역사적 죄책을 쌓고 있다. 대오각성이 화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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