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 총선은 여당에는 참패, 두 야당(野黨)에는 예상을 초월하는 대승을 안겨줬다.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제20대 국회는 국민이 여당과 정부에 대한 저항적 투표(protest voting)를 해서 이뤄진 것이지, 야당을 전적으로 지지해서 된 건 아니다. 4·13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지상명령은 오만과 독선의 정치를 버리고 대화와 설득 그리고 합리적 타협에 의한 협력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입법 주도권이 일단 두 야당에 넘어간 제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어떠한 정체성을 갖느냐에 따라 국회 운영에 대한 중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안철수 대표는 20대 국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19대 국회에서 세월호특별법 개정안과 민생 관련 경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새누리당과 더민주에 임시국회를 제안했다. 그동안의 정책 노선과 정강 정책으로 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정책적 제휴를 할 가능성이 크다. 두 야당은 국정교과서 폐기, 노동법 개정안(파견법) 폐기, 테러방지법의 독소 조항 개정 등에서 같은 입장이고, 새누리당이 추진하려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관련 법 등에 대해선 반대한다.
물론 두 야당이 연대를 한다 해도 새누리당의 동의 없이는 법안이 통과될 수 없다.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쟁점이 된 법안은 제적의 5분의 3, 즉 180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야권의 의석수는 과반은 넘지만, 이 의석수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려면 쟁점 법안의 경우 3당 모두 합의해야만 가능하다. 이 같은 여소야대의 원 구성은 여야 간의 협치(協治)를 통한 법안 통과를 불가피하게 하고 있으며, 어느 정당이든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발목 잡는 대결 구도를 조장하게 한다면 또 한 번 국민의 준엄한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더민주가 19대 국회에서와 같은 정체성 논리와 친노 패권주의를 계속 유지한다면 20대 국회에서의 협치 가능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민주는 총선 이후 당의 정체성 문제를 놓고 친노 주류와 김종인 대표 중심의 비주류 간에 치열한 갈등을 겪을 것으로 예견된다. 그동안 친노·친문 세력들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김종인식 캠페인에 양보를 했지만, 대선을 바라보는 시점에서는 더는 전술적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비주류에 당의 주도권을 내줘서는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선후보 공천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의 정체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안철수 대표와 호남에서 압승한 지역 세력과 복잡하고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른바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 정당이라고 하지만, 안철수의 새정치 정체성이 아직 확립돼 있지 못한 상태다. 호남 승리의 원동력을 제공한 천정배 공동대표, 박지원 의원, 정동영 당선인은 이념 노선과 주요 정책에서 제각기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모호한 입장이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당의 입장을 혼란스럽게 하여 존재감을 상실할 수도 있다. 또한,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놓고 더민주와의 경쟁 관계에 돌입하게 될 것이며 대선에 다가가면 갈수록 야권 통합의 압력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총선 후 두 야당이 정체성 문제로 당 내부 질서에 집중해야 하고, 여당도 친박과 비박 간의 당권 경쟁에 몰입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20대 국회가 또 실망스러운 국회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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