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5월 15일 김병기 교사와 박미경 양이 충북 증평군 형석고 교실에서 스승의 날을 맞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병기 교사 제공
지난 2014년 5월 15일 김병기 교사와 박미경 양이 충북 증평군 형석고 교실에서 스승의 날을 맞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병기 교사 제공
충북 증평 형석中 김병기 교사

‘선생님의 딸 미경입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아빠니까, 아빠에게 딸이 편지를 써 드리고 싶어서 쓰는 것뿐이에요. 일단 선생님께서 가장 먼저 하셔야 할 일은 선생님의 몸부터 챙기시는 거예요. 맨날 다른 사람을 챙기시기만 했지 정작 선생님의 몸은 하나도 돌보시지 않잖아요. 선생님께서 쓰러지시면 저는 이제 찾아가서 하소연할 사람도 없고 저희 반도 엉망이 될 거예요. 저는 선생님 덕분에 학교생활 잘 버티고 있는 거 아시죠.’

지난 2014년 형석고 1학년인 박미경 양이 김병기 교사에게 보낸 편지 일부다. 1991년 교직에 입문한 김 교사는 충북 증평군 형석고 재직시절 탈북자인 박 양의 담임을 맡아 지도했다.

1996년 함경북도 김책시 성상리에서 나고 자란 박 양은 2011년 탈북해 그해 4월 한국으로 들어왔다. 박 양이 김 교사를 만났을 때는 탈북 후 3년이 지난 뒤였지만 박 양은 생활고와 이념 갈등으로 여전히 남한의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김 교사는 “아이는 어렵게 탈북한 만큼 성공해야 한다는 열망이 강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군 장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딸로 자라며 부유한 생활을 한 박 양에게 남한에서의 가난과 주위 사람들의 편견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힘든 탈북과정을 이기지 못하고 피부암과 자궁질환까지 앓게 되자 박 양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김 교사는 “북한에서 군사 훈련 중 사망한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던 미경이에게 어머니의 병환은 큰 시련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사는 박 양의 딱한 사정을 듣고 사비를 털고, 학교 내에서 모금 운동도 전개해 600여 만 원의 장학금을 모아 전달했다. 박 양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지역사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추천서를 써주는 일도 김 교사가 도맡았다.

김 교사는 박 양을 보살피면서 자연스럽게 ‘남쪽의 아버지’가 됐다. 김 교사는 “어머니와 단둘이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미경이에게 아버지 역할을 대신해주겠다고 결심했다”며 “꿈도 욕심도 많은 아이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것뿐이었지만 아이는 나를 믿고 의지했다”고 말했다. 김 교사와 박 양은 스승과 제자로, 때론 아버지와 딸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김 교사는 올해 형석중학교로 전근왔지만 박 양은 힘들 때마다 그를 찾는다. 고교 졸업 후 법학을 공부해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는 박 양은 학업 스트레스를 받거나 장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이 들 때면 가장 먼저 김 교사에게 온다. 김 교사는 박 양이 성적 문제나 가정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날은 점심을 먹지 않고 박 양을 기다린다. 그는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아이가 찾아온다”며 “아이가 오죽 힘들면 나를 찾아왔을까 하는 마음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양의 상담사를 자처하는 김 교사지만 탈북자로서 박 양이 겪는 고통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느낄 때면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도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는 “탈북 후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남들보다 2년 늦게 학교에 들어온 아이는 자신보다 어린 학생들에게도 꼬박꼬박 선배라고 부를 정도로 겸손하고 속이 깊다”며 “그런 아이가 견디다 못해 ‘죽고 싶다’며 힘든 속내를 드러낼 때는 아이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진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통일이 돼서 북한의 친구들도 만나고 죽은 아버지의 산소도 찾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이를 볼 때면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박 양은 가난과 이념 갈등, 주위의 편견,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 이외에도 북에 있는 친구와 친척들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의 묘소를 돌보지 못하는 죄책감 등으로 끊임없이 괴로워했다.

박 양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 김 교사는 박 양이 다양한 교내·외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선후배, 동기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왔다.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고 그 와중에 스트레스도 풀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다행히 아이는 교내·외 단체 생활을 하면서 안정을 찾아갔다”며 “요즘은 어려운 가정환경의 초등학생 공부를 돕는 봉사동아리 활동과 시사 토론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아 분주하다”고 자랑했다. 또 김 교사는 박 양이 법조인의 꿈을 향해 전진하도록 응원하는 일에도 정성을 쏟았다. 그는 “올해 고 3이 된 아이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우수한 학업성적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라는 신분 탓에 미래에 대해 불안해할 때가 많다”며 “탈북자 시절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국제인권변호사가 돼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응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사는 박 양을 향한 자신의 응원이 다른 학생들에게 ‘편애’로 느껴질 것을 우려해 시간이 날 때마다 편지를 쓰는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그는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더 나아진다는 믿음을 가져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 아이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일상의 과제들을 헤쳐 나간다”며 “비록 어려운 처지이지만 신념이 강한 아이를 제자로 둔 것이 나에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교권 회복과 아동이 행복한 환경 조성을 위해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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