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하와이에서 서울로 봉환된 12위의 한국군 유해. 임병근 일병 유해는 4년 뒤에야 신원이 확인됐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2012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하와이에서 서울로 봉환된 12위의 한국군 유해. 임병근 일병 유해는 4년 뒤에야 신원이 확인됐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부산 → 장진호 → 판문점 → 하와이 → 서울 → 부산 … 2만1000㎞ 돌고 돌아1950년 8월 고향인 부산에서 미 7사단 소속 카투사(KATUSA·주한미군 부대 배속 한국군)로 입대해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고 임병근 일병의 유해가 남·북한과 미국을 오가는 2만1000㎞의 긴 여정 끝에 입대 66년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1일 “임 일병의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위로패, 유해수습 시 관을 덮은 태극기 등을 부산에 거주하는 장조카 임현식(71) 씨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임 씨는 “남자 형제 4명 중 막내였던 삼촌이 가족 대표로 전장에 다녀오겠다고 자원입대해 소식이 끊겼고, 전사일을 몰라 9월 9일을 기일로 정해 제사를 지내왔는데 올해부터는 삼촌 전사일인 12월 6일에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됐다”며 “살아생전 삼촌의 유해를 모시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야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장진호→판문점→하와이→서울→부산을 거쳐 66년 만에 임 일병의 유해가 가족 품에 돌아온 것은 천우신조였다.

임 일병 유해는 미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DPAA)가 2000년부터 북한 지역에서 미군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중 2001년 발굴돼 하와이 DPAA 본부로 옮겨졌다. 북·미 합의에 따라 미군 유해만 반출한다는 합의 조항 때문에 북한이 한국군 유해란 사실을 알았다면 유해 반출은 불가능했다. 미 군복을 입고 미군과 함께 전장에서 싸운 덕분에 역설적으로 60여 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DPAA는 정밀감식 과정에서 12위의 아시아계 신원을 확인했다.

한·미 간 유해봉환 협상 끝에 2012년 5월 국내로 다시 봉환됐다. 당시 유가족과 유전자가 일치한 7사단 카투사 김용수·이갑수 일병 2명만 62년 만에 가족 품에 안겼고 신원 확인이 안 된 나머지 10위는 국유단 유해보관소에 안치됐다. 그러다가 국유단 유가족 찾기 신형기(34) 탐문관의 끈질긴 추적 끝에 임 일병 신원이 추가 확인됐다. 임 일병 유해는 전우인 김·이 일병처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한편 오는 28일 한국과 미국 국방부가 각기 발굴한 유해발굴 상호 봉환식이 거행된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63년의 한·미 동맹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학기 국유단 단장은 “DPAA가 북한에서 발굴한 유해 중에서 한·미가 추가로 공동 감식을 진행해 국군 전사자로 확인된 15위의 유해와 국유단이 지난해 11월 미 2사단 참전 강원 양구 백석산 일대에서 발굴한 미군 유해 2위를 최초로 상호 봉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미 유해 상호봉환 행사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용산 한미연합사 연병장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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