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젠신(왼쪽) 중국화공 회장이 지난 2월 스위스 바젤에서 신젠타를 463억 달러(약 53조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뒤 미셸 드마레 신젠타 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중국화공의 신젠타 인수는 중국 기업의 해외 기업 M&A 규모로는 역대 최대라는 점에서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 ⑩ 인수·합병 ‘더 거세지는 공세’ <끝>
규제철폐·정부 지원 정책 절실 中 올 M&A, 이미 작년전체 수준 하이얼그룹, GE 가전부문 인수 중국화공은 종자기업 신젠타 사 안방보험 ‘스타우드’ 판돈 올려
빚 의존한 M&A ‘불안감’ 커져 美, 식량·군사시설 안보 경계론
중국 자본 공세는 전 세계 인수·합병(M&A) 시장 판도를 바꿔 놓을 정도로 거세게 일고 있다. 올 1분기 중국 기업의 해외 M&A 거래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이미 지난해 수준에 육박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세계 M&A 시장은 올해 초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경기가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급격히 얼어붙었다. 외신들은 시장 조사업체 톰슨 로이터 조사 결과, 올 1분기 전 세계 M&A 거래액은 6820억 달러(약 783조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나 줄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세계 M&A 시장이 빙하기를 맞은 것과 달리 중국 기업의 해외 M&A 투자는 오히려 달아올랐다. 중국의 올 1분기 해외 M&A 거래액은 1010억 달러를 기록,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중국의 연간 해외 M&A 거래액이 역대 가장 많은 1050억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중국 기업은 올해 들어 3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와 맞먹는 먹성을 보인 셈이다.
FT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 중국발 M&A 파도가 전 세계 M&A 판도를 바꿔 놓았고, 이러한 중국의 거센 M&A 공세에 서구 기업들이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과거 중국 기업의 M&A 투자는 원자재나 에너지 분야에 국한돼 있었던 반면 이제는 호텔, 가전, 종묘, 영화, 정보기술(IT) 등 여러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올 2월에는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화공(中國化工)이 스위스 종자·농약 기업인 신젠타를 463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 기업의 해외 M&A 역사상 최대 거래액으로 종전 최대 규모였던 2012년 중국해양석유공사의 캐나다 넥센에너지 인수금액(174억 달러)을 가뿐히 넘어선 것이다.
호텔 업계에서도 중국 기업의 공세가 거세다. 안방보험(安邦保險)은 지난해 힐튼 호텔로부터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19억5000만 달러에 인수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미국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으로부터 스트래티직 호텔&리조트를 65억 달러에 사들였다. 안방보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스타우드 호텔&리조트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당시 스타우드는 메리어트 호텔 측과 122억 달러 인수에 합의한 상태였지만 안방보험은 이보다 높은 129억 달러를 제시하며 판을 흔들었다. 메리어트가 136억 달러로 인수가를 올리고, 140억 달러를 제시했던 안방보험이 포기하면서 인수전은 마무리됐지만 뒤늦게 뛰어든 안방보험 탓에 최종 인수가는 최초 합의보다 14억 달러나 올라갔다.
하이얼(海爾)그룹은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제품 사업부문을 34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고, 왕젠린(王健林) 완다(萬達)그룹 회장은 ‘쥬라기 월드’와 ‘다크나이트’ 3부작 등을 제작한 할리우드 영화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35억 달러에 매입하기로 했다.
이처럼 중국 기업의 해외 M&A가 급증하면서 이에 대한 경계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중국화공의 신젠타 인수가 미국 식량 안보는 물론 군사시설 안전에 위협이 된다며 재무부에 검토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미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사위원회(CFIUS)는 안보 문제에 대한 심의에 들어가기로 했다.
중국 기업의 M&A가 부채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중국 기업은 자국 금융시장이 낙후된 탓에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마련이나 주식교환을 통한 M&A가 불가능해 M&A 자금을 은행이나 그림자금융을 통해 조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중국 기업들이 해외 M&A에 적극적인 것은 해외 기업들이 가진 선진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려는 전략”이라며 “중국 정부도 자국 기업들의 해외 M&A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조만간 역전될 가능성마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융·복합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국내 기업들이 M&A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며 “또한 업종 간 벽을 형성하고 있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 M&A 추진은 물론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