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현실과 괴리 독소조항 가득

마주 앉아 카톡 유세할 판
전화선거운동 금지도 문제

선거일 ‘엄지척·V’ 땐
처벌 사전투표일엔 허용해 ‘모순’


4·13 총선 선거운동기간(3월 31일∼4월 12일) 개시 하루 전인 3월 30일 A 씨는 친한 친구 B 씨를 만났다. A 씨는 평소 좋아하던 후보에 대해 지지를 호소하고 싶었지만 선거운동기간 전 ‘말로 하는 선거운동’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말이 기억나 고민에 빠졌다. 결국 A 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마주 앉은 자리에서 B 씨에게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메시지(카카오톡)를 보냈다. B 씨는 말로 하지 왜 뜬금없이 문자를 보내느냐고 타박을 했다. A 씨가 B 씨에게 선거법을 설명해 주자 B 씨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 다있냐’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행 선거법을 적용해 만들어본 가상 대화 장면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59조는 선거운동기간 외에 유권자들이 말(言)로 하는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자메시지를 전송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는 선거운동기간과 상관없이 허용하고 있다. 이처럼 현행 선거법은 선거운동 기간은 물론 선거운동 방법에 대해서도 과도한 규제를 하고 있어 법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울 뿐 아니라 현실과 괴리된 조항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에서 일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선거법을 포함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지난 2013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선관위는 59조를 선거운동 자유 확대를 위해 개정해야 할 대표 조항으로 꼽으면서 말로 하는 선거운동 허용이 ‘돈은 묶고, 말은 푼다’는 선거법 제정 취지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냈다. ‘말’로 하는 선거운동을 허용해도 선거 조기과열이나 과도한 비용 지출을 수반한 사회경제적 손실 방지라는 사전선거운동 금지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도 덧붙여 설명했다.

후보나 예비후보를 제외하고는 선거운동기간 전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금지한 59조와 82조의4(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선거운동)도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선관위는 일방적·무차별적인 전화 선거운동으로 인한 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동 전화 걸기나 야간 전화 걸기를 금지하는 단서를 다는 것을 전제로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2년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선거운동 기간 외 문자메시지와 SNS 등의 선거운동이 가능해졌다. 비용 부담이 크지 않은 문자나 SNS 등을 활용해 유권자의 선거운동 자유를 확대한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법 개정으로 작은 비용이 드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운동은 허용하면서 정작 비용이 아예 발생하지 않는 ‘말로 하는 운동’은 제한한다는 모순이 발생했다.

워낙 규제가 많다 보니 선거법 조항 간에 모순이 발생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선거일 인증사진을 찍으면서 ‘엄지손가락’ ‘V’ 표시 등을 하는 것은 선거운동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금지돼 있다. 하지만 사전투표 일에는 아무리 이런 행위를 해도 처벌되지 않는다. 선거법 254조는 ‘선거일’에 이 같은 행위를 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자와 그 배우자, 신고된 선거사무관계자 등만 어깨띠 등 소품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68조(어깨띠 등 소품)와 선거운동 기간에 자신의 집 또는 자동차 등에 표시물을 제한한 90조(시설물설치 등의 금지)도 문제 조항으로 꼽힌다.

각종 집회 등을 제한한 103조는 선거 기간에 일반적인 향우회·종친회·동창회·단합대회·야유회 등의 개최를 금지하고 있어 일반인의 생활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동하 기자 kd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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