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 손에 딱 맞게 특별 제작
자신 사인 넣고 ‘No.1’ 새겨
하루 200 ~ 300발씩 맹훈련
10m 공기권총은 2연패 노려
“2020 도쿄올림픽도 나갈 것”


진종오(37·kt·사진)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사격 사상 최초의 올림픽 3연패를 꿈꾼다.

진종오는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12 런던올림픽 때 50m 권총에서 연달아 ‘금빛 총성’을 울렸다. 진종오는 런던올림픽 때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도 우승(베이징대회 때는 준우승), 2관왕을 달성했기에 10m 공기권총은 2연패 도전이다.

진종오가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수확하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3회 연속 올림픽을 제패하게 된다. 진종오는 올림픽에서 금 3개와 은 2개를 챙겼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금 1개만 추가하면 과거 양궁의 김수녕, 쇼트트랙의 전이경과 함께 한국인 역대 개인 최다 금메달 공동 1위에 오른다. 런던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50m 권총과 10m 공기권총 2관왕에 오른다면 금 5개로 단독 1위. 금을 따내지 못하더라도 은메달이든 동메달이든 2개를 보태면 한국인 최다 메달 보유자로 등극한다. 메달 합계로 전이경(금 4, 동 1)과 함께 한국인 역대 공동 2위. 메달 1개를 추가하면 개인 통산 6개가 돼 김수녕(금4, 은1, 동1)과 동률을 이룬다. 진종오는 “한국인 최다 금메달과 메달 기록을 경신하고 싶다”며 “리우데자네이루는 물론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이를 악물고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종오는 50m 권총 본선(583점)과 결선(200.7점), 10m 공기권총 본선(594점)과 결선(206점) 등에서 세계기록을 독차지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준비는 완벽하다. 하루 200∼300발씩 총을 쏘며 맹훈련했다. 진종오는 고교생 시절 교통사고로 어깨를 다쳤고, 대학 2년 때엔 축구를 하다 오른쪽 어깨가 부러져 철심을 박았다. 2차례 어깨 부상의 후유증으로 하루 200발가량 총을 쏘면 팔을 들기조차 힘들 정도가 되기에 보통은 하루 150발 정도로 조절하는데,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독하게’ 마음먹고 300발까지 쏘고 있다.

진종오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영국 버밍엄의 엘리 실탄공장을 직접 찾아가 총알을 골랐을 정도로 치밀한 성격. 당시 진종오는 실탄을 주문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90파운드(약 15만 원) 정도가 남았는데, 그 돈을 고스란히 금고에 보관하면서 “4년 뒤에 반드시 다시 영국에 오겠다”고 다짐했다. 진종오는 직접 선택한 실탄으로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2년 런던에서 다시 금을 따낸 뒤 4년간 간직한 90파운드로 가족에게 선물할 티셔츠를 샀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겨냥한 ‘비장의 무기’는 3월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빨간색 권총. 스위스 모리니사에서 2년 가까이 걸려 ‘특별 제작’한 총으로 화약권총과 공기권총을 모두 바꿨다. 화약권총의 경우 지난해 4월부터 사용해온 모리니 제품을 다시 교체한 것. 제작을 시작하는 단계에 진종오가 직접 스위스로 날아가 업체에 세세하게 요구사항을 전달했고, 손잡이도 자기 손에 딱 맞게 맞췄다. 손가락 감각이 예민하기로 유명한 진종오답게 방아쇠에 손만 닿아도 격발이 이뤄질 정도로 민감하게 만들었다. 진종오는 사선에 서 있을 때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훈련이나 경기 때 신는 운동화는 구부리지도 않고, 이 외의 장소에 갈 때는 신발을 갈아신을 정도로 섬세한 선수다. 진종오는 “나한테 딱 맞춘 ‘완벽한 권총’이라서 믿음이 가고, 자신감이 생긴다”며 “아직은 새로운 총이 나를 조금 거부하는 것 같은데, 잘 달래서 올림픽까지는 완전히 손에 익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진종오는 빨간색 총을 만든 데 대해서는 “검은색과 은색 총은 이미 갖고 있어서 다른 색으로 택했다”며 “원래는 보라색을 좋아하는데 너무 여성적인 것 같아서, 강렬해 보이는 빨간 색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예전 권총에는 일련번호로 583(500m 권총 본선 기록)을 적었는데, 이번 권총은 자신의 사인을 넣고 바로 아래에 ‘No.1’을 새겼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시상대 꼭대기에 서겠다는 의지의 표현. 진종오는 “나한테 딱 맞춘 ‘완벽한 권총’이라서 믿음이 가고, 자신감이 생긴다”며 “아직은 새로운 총이 나를 조금 거부하는 것 같은데, 잘 달래서 올림픽까지는 완전히 손에 익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진종오는 역경을 딛고 명사수 반열에 올라선 노력파다. 사격을 시작한 시기부터 늦었다. 보통은 늦어도 중학생 때 전문 사격 선수로 입문하는데 진종오는 강원사대부고 1학년 때인 1995년에야 총을 잡았다. 모형 총 조립을 즐기는 모습을 본 아버지의 지인이 ‘사격을 시켜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두각을 나타낸 건 경남대 재학 시절인 1999년 문화부장관기 학생사격대회 2관왕에 오르면서부터. 2002 부산아시안게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아 10m 공기권총에서 동메달을 땄고, 아테네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2위에 올랐다. 지금은 강심장으로 유명하지만, 당시엔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긴장감을 이기지 못해 7발째 6.9점을 쏘면서 금메달을 놓친 아픔도 있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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