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세계적 베스트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패러디했습니다. 냉장고에 갇혀 있던 수수한 생닭 아가씨가 화끈한 매력을 지닌 지배적인 요리사와 만나 순진한 영계에서 거침없이 막 나가는 치킨으로 변해가는 50가지 단계를 짧은 이야기와 닭 요리 레시피에 담았습니다. 이야기는 꽤 충실하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전개와 캐릭터를 따라갑니다.
이 책으로 인해 미국에서 ‘패러디 쿡북(Parody Cook book)’이라는 장르가 확고해졌다고 하니 더 흥미롭습니다. ‘패러디 쿡북’은 소설, 영화, 드라마의 구조에 요리 이야기와 레시피를 풀어낸 책입니다. ‘치킨의 50가지 그림자’에 이어 ‘베이컨의 50가지 그림자’ ‘케일의 50가지 그림자’가 나왔고,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를 패러디한 ‘베이킹 배드(Baking Bad)’, ‘왕좌의 게임’을 패러디한 ‘스콘의 게임’, 하퍼리의 ‘앵무새 죽이기’에서 제목을 따온 ‘앵무새 데킬라’ 같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작가가 E L 제임스라는 필명을 썼듯이 F L 파울러도 필명 뒤에 숨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습니다. 인기 드라마 ‘워킹 데드’와 좀비물 광팬인 그는 D B 워커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좀비들이 지배하는 세상 속 인간의 사투를 그린 ‘워킹 데드’를 패러디한 요리책 ‘스네킹 데드’도 내놨습니다. 아마존에 들어가 보니 5점 만점 별점들이 줄줄이 붙어 있습니다.
요리와 음식의 전 세계적 열풍 속에 요리책의 새로운 시도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듯 문화 전체에서 최고의 구매 파워를 자랑하는 ‘팬’과 ‘팬덤’을 겨냥한 상품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스네킹 데드’의 주 독자는 ‘워킹 데드’ 팬들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작가들 스스로의 즐거운 ‘팬활동’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만난 세계적 출판사 펭귄의 편집자는 최근 미국에서 종이책 판매가 늘고 있다며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 컬러링북처럼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장르의 등장 등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꼽았습니다. 패러디 요리책도 그런 시도가 아닐까 합니다.
약간 새롭게 비틀어 보고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는 즐거움. 우리도 도전해 볼까요? 패러디 요리책일 필요는 없습니다.매일 가는 길이 아니라 조금 다른 길을 걸어보는, 자신이 잘 알고 가장 사랑해야 하는 자기 일상을 조금 비틀어 보는, 일상의 패러디, 어떠신가요.
최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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