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는 골목 상권을 폐허로 만들며, 과거 사람들이 소통하던 골목을 단순히 마트에 가기 위해 차를 주차해 놓는 장소로 바꾸었다. 사람들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단절된 관계망 속에서 외로움을 대신하기 위해 소비한다. 사진은 사람들로 붐비는 한 대형 마트.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 / 신승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주말에 마트에 가서 무엇을 사러왔는지 깜빡 잊어버린 적이 있을 것이다. 마치 테마파크에 간 어린이처럼 환상적인 상품의 미로를 따라다니다 결국은 충동구매로 카트를 가득 채우고 계산대 앞에 선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의 ‘욕망’은 어떻게 조종된 것일까. 마트가 생기면 주변의 전통시장과 골목의 가게들은 존폐위기에 처한다. 마트가 도시의 자원과 부, 에너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지역사회는 황폐해진다. 공동체는 파괴되고, 사람들은 관계가 단절된 ‘원자적’ 개인으로 남는다. 마트에 지배당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은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은 발터 베냐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19세기 자본주의 세계를 들여다본 것처럼, 마트를 통해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와 그 안의 사람들을 분석한다.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욕망자본론’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냈고, 생활협동조합 운동 등 ‘관계’의 복원을 통해 대안적 세상을 모색해온 중견 철학자다.
전통시장과 동네 가게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 흥정과 수다가 있고, 물건을 사지 않아도 서로 눈인사를 하며 정(情)을 유통했으며, 물건에 사랑과 정성도 담겨있다. 마트에선 점원과 소비자가 서로를 알 필요도, 친해질 필요도 없다. 물건을 사는 일 이외에 다른 것을 기대한다면 그게 이상해진다. 우리가 물건에 대한 욕망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한 필요의 차원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인 외로움과 고독을 대신하기 위해서가 많다. 도시에서 고립된 사람들일수록 소비가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는 착각과 망상에 빠져든다. 소비는 관계의 소원함을 진정시켜 주는 마약이나 안정제가 됐다.
노동현장에서 천대받는 노동자는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며 ‘물건을 사면 왕으로 환대받을 수 있다’는 환상과 접속한다. 동네가게에는 주인이 있지만 마트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마트에서 소비자는 자신이 ‘왕’이자 ‘갑’이라는 환상에 빠진다. 자신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으며, 의지대로 물건을 산다고 생각한다. “광고만 보았다고 소비로 연결될까?”라고 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이미 텔레비전이나 광고에서 본 이미지와 영상, 그 ‘기호-욕망’에 좌우된다. 필요가 아니라 광고에 나온 연예인과 접속했다는 환상, 브랜드가 주는 신분 상승의 욕망에 따를 뿐이다. ‘기호-욕망’의 소비생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가 바로 마트다.
골목까지 파고드는 마트의 전면화는 소비자도 생산자도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람을 장악하는 이는 유통업자다. 돈이 마트를 통해 외부로 빠져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동네상권은 폐허가 된다. 할인판매부터 한정판매, 묶음행사 등은 우리가 실제보다 싸게 샀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군중은 마치 폭도처럼 광란한다. 이는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바타유가 언급했던 ‘카니발리즘’, 1년 내내 노동과 규율 속에 붙잡혀 있던 노예들에게 허락되는 며칠 동안의 향락과 방탕의 축제와 흡사하다.
하지만 이런 할인은 상품을 납품하는 서민경제의 한 축인 중소기업의 큰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소비자는 곧 노동자이고, 마트가 싸게 팔면 팔수록 노동자는 더 가난해진다. 마트에 의해 쫓겨난 가게주인들, 싼 가격에 납품해야 하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들,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라는 질 나쁜 일자리 등은 결국 소비심리 위축과 디플레이션 같은 형태로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바로 소비자와 노동자라는 두 주체는 원래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노동현장에서 천대받지만 소비자로서는 환대받는다는 환상을 정확히 인식하는 게 출발점이다. 우리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오래된 미래, 공동체가 살아있는 동네시장에서의 ‘거래관계’의 회복에 대안이 있으며, 그래서 마트는 ‘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창한 이념이나 운동이 아니라 마트를 넘어서 소비를 꿈꾸는 건 우리 자신들 스스로 생활과 생각, 관계의 전환을 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