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영양학 박사로 북한 요리연구가이기도 한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이 25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한 뒤 ‘통일약과’ 재료를 사기 위해 서울 낙원상가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식품영양학 박사로 북한 요리연구가이기도 한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이 25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한 뒤 ‘통일약과’ 재료를 사기 위해 서울 낙원상가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이애란(52) 자유통일문화원장은 1997년 8월, 4개월 된 아들을 업고 일가족 9명과 함께 탈북했다. 의사였던 남편과는 생이별을 감수했다. 이 원장은 “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몰릴 상황이라 애라도 피신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은 같이 오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아들은 현재 중앙대에 재학 중이다.

북한 신의주경공업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양강도 혜산시 과학기술위원회 식품품질감독원(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10여 년을 근무했던 그는 탈북 후 19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이 고생하고 헤맸다”고 말했다. 호텔 청소부를 시작으로 보험설계사를 거쳐 학업과 직장생활을 번갈아 했다. 그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보험설계사 일은 많이 힘들었다”며 “서술체계도 다르고 ‘커피를 내린다’와 같은 말의 의미도 몰라 소통에도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이화여대 식품영양학 석사과정에 들어간 뒤 음식점을 차렸는데 도저히 두 가지 일을 하기 힘들어 학업에만 전념했다. 석사학위를 받은 후 국순당 창업자인 배상면 주류연구소에서 근무하다 평화문제연구소(소장 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에서 북한 향토백과사전 편찬위원으로 활동했다.

2009년 식품영양학 박사학위는 탈북자 여성박사 1호를 기록하게 해줬다. 이를 자산으로 ‘남북한 통일은 밥상에서부터’라는 슬로건 아래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현 자유통일문화원)을 차렸다.

이 원장은 북한 계급과 관련, 출신과 성분에 따라 3대 부류, 51개 계층으로 설명한 뒤 “우리는 3부류, 28계층에 속했는데 이른바 적대계층이었다”고 밝혔다. 모든 생필품 배급에서 차별당하는 것은 물론 기차를 탈 때도 좌석이 나뉘었다. 이 원장은 “북한 기차는 입석, 나무의자, 푹신푹신한 의자, 침대칸 등 4칸으로 나뉘는데 일반 노동자들은 맨날 서서 타야 했다”고 설명했다.

박효목 기자 soarup624@munhwa.com

△1964년 평양 출생 △이화여대 식품영양학 박사 △제18대 국민실향안보당 국회의원선거 출마 △경인여대 식품영양조리과 교수 △하나여성회 대표 △미 국무부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 수상 △자유통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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