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현행 대규모기업집단지정제도가 기업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개선할 것을 시사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현행 대규모기업집단지정제도가 기업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개선할 것을 시사했다. 연합뉴스
그래픽=하안송 기자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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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5兆’ 이유 모든 혜택 없애고 한꺼번에 ‘규제 폭탄’
총액기준 7兆~10兆로 상향 검토… 글로벌 경쟁력 강화


지난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대규모기업집단지정제도(대기업집단지정제)의 문제점과 개정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이후 대기업집단지정제의 개선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재계는 자산총액 5조 원이 넘는 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규정하는 이 제도의 폐지 혹은 기준 완화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 및 야권 성향의 시민사회 단체는 “대기업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장치”라며 현행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대기업집단지정제가 과연 무엇이고, 왜 이 시점에서 개선돼야 하는지, 그리고 개정을 반대하는 집단에서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1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란 ?

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 과도한 경제력 집중,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1987년부터 실시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4월 1일 지정을 한다. 1993년 4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의 시행으로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정기준이 종전의 자산총액 4000억 원 이상인 기업집단에서 자산총액 상위 30대 기업집단으로 바뀌었고, 이 기준에 따라 1993년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는 30개 그룹·604개 계열사가 지정됐다. 하지만 상위 순위를 기준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자 기준을 순위가 아닌 2009년부터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으로 변경해 적용하고 있다.

2 재계, 왜 폐지 주장하나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공정거래법(7~18조)에 의거해 기업결합의 제한, 지주회사의 설립 규제, 상호출자의 규제, 계열회사에 대한 채무보증의 제한, 소속 금융·보험회사의 계열회사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합법적 기업결합의 신고 의무 등의 규제(30여 개 이상 법률 규정 규제)를 받게 된다. 중소기업 시절에는 정부 등으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던 대기업이 자산규모가 5조 원을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한꺼번에 모든 혜택이 사라지고 엄청난 규제를 받는다. 재계는 이 같은 자산규모에 따른 일반적이고 획일적 규제가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3 최근 문제가 된 사례는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공정위로부터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카카오와 하림, 셀트리온을 꼽을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 업체인 셀트리온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중소기업일 당시에 지원받던 연구·개발(R&D) 지출액의 세액공제율이 8%에서 3% 이하로 떨어진 상태이다. 정보기술(IT)기업인 카카오는 대기업집단 지정으로 인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규제를 받게 돼 유망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신기술 및 우수인력을 보유한 스타트업들과의 M&A가 절실하지만 대기업집단지정으로 인해 이 같은 시도가 불가능하다.

4 카카오는 대기업, 네이버는?

국내 순수 IT기업 중 카카오가 자산총액 5조 원을 넘기며 처음으로 대기업 집단에 지정됐다. 하지만 매출 면에서는 경쟁업체인 네이버가 카카오의 3배에 달한다. 네이버의 국내 계열사 자산총액은 5조 원에 못 미친다. 그러나 해외법인을 포함할 경우 네이버의 자산규모는 5조 원을 넘으며 카카오의 자산 규모보다도 크다. 이 때문에 재계 및 관련 학계에서는 해외법인도 자산 산정 시 포함하거나 매출액 등 새로운 기준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5 자산규모 따른 규제의 문제점은

대기업집단은 시장지배력과 경제적 영향력으로 시장을 왜곡할 가능성도 갖고 있다. 하지만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자산을 획득한 기업에 대해 자산이 일정 규모를 넘었다는 이유로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기업의 자산은 기업활동에 따라 대체로 증가하며 국제회계기준(IFRS·2011년) 적용 이후에도 자산이 자연 증가했다. 자산에 따라 시장지배력을 억제하기 위해 대기업집단을 지정하고 규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6 다른 나라에도 유사제도 있나

일정한 규모 이상 기업집단만을 대상으로 규제하는 제도는 해외에는 없다. 재계에서 과거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 객관적이고 국제적인 표준 없이 만들어진 제도를 폐지할 수 없으면 신중하게 규제기준을 재설정하고 경제성장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사후 보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7 中企, 제도개선 반대 이유는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집단지정제가 대기업으로의 경제력집중과 부조리한 지배구조개선에 상당한 이바지를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제도의 기준이 완화(5조 원 이상으로 상향)될 경우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시장으로 또다시 진출해 중기·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기중앙회 등은 지난 2008년 자산 기준이 2조 원에서 5조 원으로 상향되며 기존 대기업집단에서 해제된 대기업들이 공공조달시장 위장진출, 골목상권 침투 등의 행위로 중기와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고 보고 있다.

8 기준상향하면 중견기업엔 혜택?

대기업집단지정제의 자산기준을 상향할 경우 대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회귀해 ‘중견기업 특별법(산업위 법안소위 통과)’의 적용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존재한다. 중견기업특별법 역시 R&D, 인력, 해외마케팅 등에서 정부 지원이 따르는데 독자 생존할 수 있는 대기업이 중견기업을 가장해 이 같은 혜택을 누릴 것이란 지적이 중견기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올라가지 않는 ‘피터팬증후군’을 막기 위해 만든 특별법을 대기업이 악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중기·중견기업 등의 반대에 대해 재계는 각 분야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서 대형화, 전문화로 가는 게 세계적 추세인데 중기·중견 측의 주장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국내 대기업만 규제대상이 되다 보니 우리 대기업의 자리를 해외기업 등 외국자본이 대체하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중기적합업종 제도 시행 이후 해당 업종의 외국기업 점유율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 바 있다.

9 개선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아직 공정위는 이 제도의 개선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는 없다. 하지만 ‘5조 원 이상’이라는 기준이 급변하는 산업계 환경을 고려할 때 너무 일반적이고 획일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 제도가 소극적으로 개선될 경우 액수의 상향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된다면 제조업, 정보통신기술(ICT) 등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대기업집단지정 기준 내용을 세분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학계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대기업 경제력집중 억제 정책을 대기업집단지정제와 같은 사전적·포괄적 규제 방식이 아닌 공시의무 강화 및 불공정행위 조사 등 사후적·개별적 규제방식으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10 공정위 입장과 현재 태도

박 대통령이 대기업집단지정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2일 뒤 공정위는 제도 개선을 언급했다. 지금까지 공정위는 재계의 자산기준 상향 요구에 대해 “여러 고려할 사항이 많아 구체적으로 기준상향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공정위는 일단 자산 기준을 5조 원에서 7조∼10조 원까지 올리는 방법과 자산총액 상위 30대 그룹 등으로 순위를 끊어서 지정하는 방법, ICT·바이오 등 신산업 특성을 고려해 규제 차등을 두는 방법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자산 기준 이외의 내용이 수정될 경우 고용·세제·금융·중소기업 등 약 60개의 법령이 함께 개정될 수도 있다. 이들 법이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지정제도를 원용해 각종 규제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민·박수진 기자 bohe00@munhwa.com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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