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 /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파르마콘(Pharmakon). 플라톤의 저서 ‘파이드로스(Phaidros)’에 나오는 말로, 치료와 독(毒)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가진 파르마콘은 하나의 글(단어)이 상황에 따라 모순된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한의학에서 같은 약재도 체질에 따라 독이나 약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새삼 파르마콘을 떠올리는 것은 ‘규제’가 우리 사회의 파르마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4개 시·도의 27개 지역전략산업에 대해 핵심 규제를 철폐하는 ‘규제 프리존’ 도입 계획을 밝혔다. 투자를 저해하는 규제가 전혀 없는 ‘무(無)’ 상태의 공간을 조성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고 창조경제 생태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저성장, 고실업 등 뉴노멀 시대에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규제 철폐로 지역경제를 글로벌 수준으로 육성하고, 국가적 측면에서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우리 경제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농식품 산업도 미래 성장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규제 프리존’을 통해 규제 파르마콘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그간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을 생산 중심의 1차산업에서 제조·가공, 유통·수출 및 농촌관광 등이 융복합된 6차산업으로, 정책 대상을 개인 중심에서 지역 단위로 전환한 바 있다. 특히, 올해에는 ‘지역 단위의 6차산업 시스템 구축’을 통한 농업의 체질 개선을 본격화하면서 기존 생산 중심의 규제를 농업의 6차산업화 등 환경 변화에 맞춰 개선해 나가고 있다. 농촌 융복합 시설 제도를 도입해 숙박·음식·판매·체험 등 원스톱 인허가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나아가 농생명(農生命)산업을 지역전략산업으로 선정한 전라북도를 통해 농식품산업 분야도 개별적 규제 개선을 넘어 ‘규제 프리존’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전라북도는 새만금, 국가 식품 클러스터 및 민간 육종 연구 단지 등 농업의 미래 성장산업화를 이끌어나갈 핵심 기반시설이 집중 조성되고 있어 지역단위 6차산업화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이 농생명 규제 프리존에 대해서는 규제가 경제 활동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관련 부처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제도를 정비하고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사실 농가소득 감소, 고령화 및 농촌 활력 저하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도 기업의 자본과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규제 프리존과 유사한 형태인 농업특구를 지정한 바 있다. 고품질 쌀 주산지로 유명한 니가타(新潟)시는 2014년 혁신적 농업실천특구로 지정돼 농지 소유·임대차 및 농업법인 관련 규제가 완화된 이후 대형 유통 업체인 로손(LAWSON), 세븐일레븐 등이 농업에 참여하면서 농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우리나라 규제 프리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라고 한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은 규제 파르마콘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물론 규제라고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국민 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가 있는가 하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좋은 규제도 있다. 규제 파르마콘의 요체는 양날의 검을 가진 규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국민이 바라고 있는 ‘규제 프리존 특별법’이 조속히 입법돼 농식품산업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협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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