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 뒤가 급할 땐 고마운 화장실이었는데, 막상 볼 일을 다 보고 나올 때는 냄새난다며 코를 막는 염량세태를 풍자하는 말이다. 절반이 넘는 의석을 점했던 여당이 122석으로 떨어지고 더불어민주당(123석), 국민의당(38석), 정의당(6석) 등 야권이 167석, 무소속이 11석을 얻은 4·13 총선 결과가 나온 후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싼 여야의 속셈이 변소(便所) 갈 때, 나올 때 달라지는 ‘변심(便心)’이 생각나게 한다.
당초 국회선진화법을 소수독재법, 망국법이라고 매도하며 헌법재판소에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 의결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권한쟁의심판까지 청구하는 등 국회법 개정 드라이브를 걸던 새누리당은 다소 주춤한 모양새다. 여당 성향 무소속 당선인(7석)을 다 끌어들여도 과반에 턱없이 모자라는 새누리당은 오히려 국회선진화법에 기대야만 야권이 연대한 법률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는 곤궁한 처지가 됐다. 반면 국회선진화법을 금과옥조처럼 모시던 야당은 관련 조항을 고쳐야 할 이해관계가 생겼다. 야권이 연합하면 절반 의석은 가볍게 넘기지만, 현행 국회법상 여야 합의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필요한 5분의 3(180석) 이상 의석을 충족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여야 역전 현상이 외려 국회선진화법을 고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언론사 편집국장·보도국장과의 오찬에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말한 것을 ‘책임 떠넘기기’로만 볼 건 아니다. 야당이 집권해도 현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공약이나 정치철학을 정책으로 구체화할 입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느 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없는 지금이 적기다.
헌법재판관들이 의견을 개진하고 논의하는 평의(評議)가 수시로 열리는 등 헌재의 최종 결론이 임박한 상황이다. 21일 오전 10시에 열렸던 평의는 재판관들 간에 격론이 벌어져 평소보다 2시간을 넘겨 오후 8시쯤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선진화법의 쟁점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여야 합의·천재지변·국가비상사태로 제한한 국회법 85조 1항과, 신속처리안건 지정 요건으로 5분의 3 이상의 가중다수결을 규정한 85조의 2 제1항이다. 이는 과반 출석에 과반 의결을 규정한 헌법 49조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법 전문가가 많다. 그러나 법 논리 이전에 국회선진화법은 소수당이 반대하는 어떤 것도 국회에서 처리가 안 되는, 정치불능 상태에 빠트린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19대 국회의원들은 헌재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국회선진화법을 결자해지(結者解之)해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조금이라도 벗고 퇴장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상황이 불리해졌다고 국회선진화법 고수로 돌아서지 말고 ‘식물국회법’ 탄생의 원죄를 스스로 씻어내야 한다. 야당이 태도를 바꾸는 게 저열해 보이긴 해도 국회선진화법을 그냥 둬선 안 된다. 2017년 12월 20일 선출되는 19대 대통령이 몇 년 뒤 지금 박 대통령처럼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푸념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면 안 되지 않겠나.
sdg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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