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6일 국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양당 체제의 식물국회를 심판해 3당 체제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만약 이 말이 박 대통령의 진심이라면 상황 인식에 심대한 오류가 있는 것이며, 총선 민의를 알고도 이런 말을 했다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총선 기간 중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당의 최고 지도자는 당 대표가 아닌 박 대통령이라고 공개적으로 당당히 말했다. 국민은 바로 그런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을 심판한 것이다.
이런 총선 민의에도 아랑곳없이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을 수족처럼 부리려 한다. 특히, 유승민 의원에 대해선 ‘자기 정치’ ‘배신의 정치’를 또다시 언급하며 새누리당의 친박(親朴)에게 사실상 복당 불허 메시지를 주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친노 대통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국민적 지지를 잃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제라도 박 대통령은 친박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 대통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2002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당 운영에 반발해 정당(政黨) 민주화를 촉구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해나 아렌트는 권력은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실현되며, 권력이 폭력과 다른 점은 상호 이해를 지향하는 의사소통과 합의를 통해 형성되는 힘이라고 했다. 그런데 보수가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포용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은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권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박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평지를 달릴 때보다 언덕을 올라갈 때 말의 역량이 나타난다고 했다. 바로 지금 박 대통령은 그의 능력과 추진력을 발휘할 때다. 1871년 보·불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독일 통일을 완성한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책무”라는 명언을 남겼다. 박 대통령은 지금 한반도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잡아챌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를 자문해 봐야지, 새누리당의 친박, 비박(非朴) 논쟁에 끼어들어 원격 조종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에 집착한 박 대통령에 대해 보수 언론에서조차 박 대통령을 질타하며 아예 기대를 접었다는 표현까지 하고 있다. 이는 분명 박 대통령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불행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누구도 권좌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이제 박 대통령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아서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한다. 내려올 때 국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투영될지는 전적으로 박 대통령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박 대통령은 한 번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어떤 모습으로 권좌를 내려왔는지를 반추해봐야 할 것이다.
권력은 모래알과 같아서 손에 꽉 쥐면 쥘수록 빠져나간다. 권력은 내려놔야 힘을 얻는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을 놔주든지 아니면 최소한 수평적인 당·청(黨靑)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는 단념의 기술’이라고 말한 막스 베버의 말을 박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