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석 / 고려대 교수·행정학

바야흐로 국가적으로 큰 결정의 시기다. 수출이 줄어들고 있는 한국 경제의 어려움이 예전과 다르고,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해 동북아의 정세 변화도 비상(非常)하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 청년실업, 복지 및 의료 비용 증가 등 이미 한국 사회를 옥죄어오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응도 시급하다. 그리고 5년 단임의 대통령을 선출해 놓고, 큰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바라보는 지금의 권력 구조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국가적 고민도 필요하다.

이렇듯 크고 중요한 문제를 처리할 책임은 곧 정치에 있다. 4·13 총선에서 집권당이 참패하고, 3당 구조가 만들어질 것을 예측한 전문가와 정치인은 별로 없다. 이는 국민이 먼저 한국에 들이닥칠 큰 파동의 조짐을 느꼈다는 것과 다름없다. 국민은 다가오는 위험한 파동의 조짐을 느끼고 불안한데, 국회의원들은 선거구 획정과 공천 문제로 스스로의 민생에 몰두했으니, 선거 결과가 일반 예측대로 나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의외일 것이다. 국민의 문제를 풀어주지는 못한 채 자신의 문제도 제때에 못 푼 제19대 국회는 비록 마지막 본회의를 남겨뒀지만, 1만74개의 법안을 폐기해야 할 상황이다.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민생 국회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국민의 민생 문제는 시장통에 나가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한 큰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민생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큰 문제들에 적절히 대처하는 데 정치권의 역량 이상의 것이 없다. 한국의 정치권이 이러한 ‘민생’ 문제 해결에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마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무(無)노동 고(高)임금’ 국회라는 표현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서서히 문이 닫히고 있는 제19대 국회는 그렇다손 치고, 다음 국회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 정치권에 불세출(不世出)의 정치가가 등장해 국민이 희구하는 이 시대의 정치 의제와 정책 의제를 적확하게 선택하고, 정치적 컨센서스를 이끌어내 ‘큰 문제들’을 해결해 내면 그 이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국운(國運)에 달린 것이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제도 개혁일 것이다. 특히, 정치 본연의 문제 해결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회의 성과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국회의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적 역량은 무엇인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에 기초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비록 그 나름의 문제를 지니고는 있지만, 정책 결정의 전문성에 관한 한 미국 의회는 국민과 행정부의 존경을 받는다. 심지어 미국 의회의 정책 청문회는 녹화돼 대학에서 교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 의회의 특성은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닌 것이다. 그들은 의회의 정책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 심의에 관한 한 탈(脫)당파적 소위원회를 위주로 이뤄지는 의회 분권화 개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그들은 의회도 하나의 조직으로서 의회의 성과는 의원과 이를 지원하는 전문가 조직의 합작품이라는 성과 모형을 가지고 의회를 운영한다. 의원 보좌관이 상당수 정치 지망생으로 채워지고, 종종 지방의원으로 진출하는 우리식의 모형과 크게 다른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회에도 전문 지원 조직이 있지만, 그의 규모와 역할은 그들의 경우와 상당히 다르다. 지금 우리에게는 국회선진화법에 담긴 것과 전혀 다른 의미의 국회 선진화가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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