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돌이켜보면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 무시가 빚어낸 참사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상술에 도덕성을 기대한 자체도 정부의 무능력이다. 어느 한 정권만의 문제도 아니다. 역대 정부에 걸쳐 십수 년 같은 실수는 되풀이됐다. 첫 단추만 잘못 끼워서가 아니다. 알고도 수차례에 걸쳐 묵인·방조됐다. 순간마다 정신 차렸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 정부 책임론이 커지는 배경이다.
SK케미칼이 1996년 개발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은 세정제 용도였다. ‘작업 시 노출 금지’가 경고됐다. 그런데도 1997년 환경부는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관보에 고시했다. 살균제로 둔갑한 유독 물질은 이렇게 어이없이 살인 무기로 인간에게 다가왔다. 옥시레킷벤키저(옥시)는 2000년 살균제를 출시했다. 2003년 PHMG가 유독물질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만(2014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위원회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백서), 역시 가습기 사용에 제동은 걸리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물론 없었다.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도 마찬가지. 당시 사업자는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신청서’를 내면서 PGH 성분이 배출되는 주요 경로에 분무(aerosol) 형태로 PGH가 노출될 수 있다고 적시했지만 정부의 흡입·피부 독성 평가는 없었다. PGH는 후발 제품으로 버터플라이이펙트가 인터넷을 보고 만든 ‘세퓨’의 원료가 됐다. 세퓨는 정부 인증 친환경제품으로 포장돼 판매되기까지 했다. 2007년 환경부 주도로 환경보건법이 제정됐으나 산업부는 오히려 제동을 걸었다는 의혹도 나왔다. 환경부의 무기력을 넘어 국민생명 존중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협잡으로 지적될 만하다. 2011년까지 가습기 살균제는 법에 따라 ‘자율안전확인대상 공산품’으로만 신고돼 있었다. 의약품·의약외품으로 지정됐더라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를 받았을 텐데 또 한 번의 검증을 피해갈 수 있었다. 살균제 성분의 유독성에 대한 정부의 오판, 부실한 관리·검증 시스템이 초래한 비극이다. 가습기 피해자의 절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부처 간 책임 핑퐁은 계속됐다. 2014년 피해자를 구제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환경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도 환경부는 보상 요청 수용 시 정부 부담을 이유로 반대했다.
피해 구제에 대해 손 놓고 있던 정부는 뒤늦게 추가로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폐 질환 이외의 질환으로 피해 판정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미 2013∼2015년 1·2차 피해조사 결과 221명이 폐 손상이 거의 확실(1단계)하거나 가능성이 높다(2단계)고 인정됐다. 이 중 사망자는 95명이다. 환경부는 3일 살생물제(바이오사이드) 전수조사 대책도 내놨다. 이 역시 제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는 일이 기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과 동일시되는 우(愚)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 무차별적 규제 완화가 만능은 아니라는 의미다. 국민의 생명과 사회 안전을 위해 필요한 규제는 정부의 책임이자 의무다. 뒷북 평가가 나오는 만큼 환경부는 제대로 된 결과로 답해야 한다.
jupiter@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