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도깨비불을 본 적이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여름밤 느티나무 아래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시절이었다. 비 갠 저녁 공터 건너편 공동묘지 근처에서 처음에는 등불만 한 것이 나타나더니 세포 분열하듯 여러 개로 나뉘어 산기슭에서 아래위로 퍼져나가다 다시 모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도깨비불이라고 했다. 눈 밝은 사람은 도깨비불 아래에 그림자 같은 것이 보인다고도 했다. 밤이 이슥하도록 흩어졌다 모이고 또 흩어지는 도깨비불을 할머니 치마폭에 안겨 숨을 죽이고 보았다.

일찍이 한비자(韓非子)는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은 개이고, 가장 쉬운 것은 귀신”이라고 했다. 귀신은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쉽고, 개는 누구나 알고 있으니 어렵다는 것이다. 귀신이 불과 그림자로 나타난 것이 도깨비다. 할머니 이야기 속의 도깨비는 장난도 심하다. 남자들이 장을 보던 옛날, 건넛마을 이 서방은 명태 한 마리를 지게에 달고 술기운에 비틀거리며 장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앞에 물이 있으니 바지를 걷어야지.” 도깨비가 한 말이었다. 겁먹은 이 서방은 얼른 바지를 걷었다. 하지만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종아리가 가시에 긁혔다. 도깨비는 깔깔거리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서는 가시밭길이니 걷은 바지를 내리라고 해서 내렸더니 물웅덩이였다. 도깨비의 장난에 지친 그는 잠시 쉬려고 지게를 벗었더니 다시 씨름을 하자며 나타났다. 도깨비는 왼쪽으로 넘기면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던 그는 왼쪽으로 넘기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밤새 씨름을 하던 도깨비는 동 트기 전에 사라졌다. 술이 깬 그는 자신이 밤새도록 지게와 씨름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도깨비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 ‘돗가비(망량·망량)’로 쓰였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리매망량(리魅망량)’으로 나오는데 ‘리매’는 산귀신, ‘망량’은 물귀신이다. 한편 ‘장자(莊子)’에는 그림자의 그림자(그림자에 딸린 그림자)를 망량(罔兩)이라 했다. 이때 그림자는 실상이고 망량은 허상이다. 허깨비를 말한다. 도깨비의 ‘도’는 환영(幻影)이고 ‘깨비(가비)’는 귀신이다. 귀신이 불로 나타난 것이 도깨비불이다. 두보의 시에서는 귀화(鬼火)라 했다. 도깨비를 ‘돗아비’로 보아 도깨비는 남성이라는 설이 있고, 시골에서는 남성의 상징이었던 부지깽이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래서 도깨비는 과부를 좋아한다고 한다.

옛날 어느 고을, 가난한 과부의 집에 밤마다 도깨비가 나타나 금은보화를 마당에 두고 가니 과부는 금세 부자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과부가 외간남자를 불러들여 부자가 되었다고 수군거렸다. 과부는 이제 금은보화도 싫고 어떻게 하면 도깨비를 떼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도깨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백말피를 구해 담장 위에 칠하면 도깨비가 놀라 다시는 오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하자 과연 도깨비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장난치는 도깨비, 과부를 돕는 도깨비처럼 우리의 도깨비는 따뜻하다. 아마 그때는 우리도 따뜻했을 것이다.

담산언어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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