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인류에게 무한한 행복을 갖다 주리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이런 기대가 깨진 것은 우생학, 인체실험, 원자폭탄, 환경 재앙을 겪은 20세기 중반이었다. 세기 말이 가까웠을 때 생명공학이 무서운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 주었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과학윤리가 심각하게 제기된 계기였다. 199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과학회의는 과학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과학의 방향을 바로잡는 선언과 의제를 채택했다.
우리 정부는 부다페스트 회의의 후속 작업을 서둘렀고, 과학윤리를 점검·연구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과정에서 황우석 사건이 터졌다. 국민의 영웅으로 떠오른 스타 과학자가 하루아침에 희대의 과학 사기꾼으로 전락한 이 사건은 온 나라를 흔들었다. 당황한 정부는 연구윤리 확립을 황급히 추진하게 됐다. 유네스코의 정의를 따르면 과학은 공학, 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을 다 포함하니까 과학윤리는 학문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학문윤리 안에서도 연구윤리는 기본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대형 연구 부정 사건들이 일어나 이미 1980년대 이후 연구윤리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고 개선 노력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 문제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들보다 한 세대 뒤떨어져 있는 셈이다. 10년 전 황우석 스캔들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주도한 여러 가지 조치가 있었고 대학·연구소·학회들이 부산을 떨었으며 많은 관련 모임이 줄을 이었다. 이제는 태풍이 지나간 뒤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연구윤리의 확립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연구하고 제도를 보완하고 실천에 옮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연구윤리는 광범하지만 가장 핵심을 이루는 것은 날조(捏造), 변조(變造), 표절(剽竊)이다. 과학의 진실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 세 가지 부정을 막아야 하는데 이것은 정직·정확·투명과 관련된다. 물론 이런 원칙들은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학계는 오랫동안 건전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법천지에서 살아왔다. 연구윤리를 어겨도 규제 장치가 없는 풍토에서 부정이 타성으로 굳어지고 이런 것들이 쌓여 관행이 돼 버렸다.
연구윤리는 정치권에서 더 시끄럽다. 많은 고위 공직자 후보가 몇십 년 전의 ‘하찮은’ 실수 때문에 낙마했다. 표절은 관행이었다는 변명이 나오고, 운이 나빠 걸렸다고 억울해 한다. 하지만 지도자란 보통 사람들과 달라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엄격한 검증을 거치는 것을 불평해선 안 된다. 다만, 오래전의 연구윤리 위반은 다소 관대하게 보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당시의 관행을 고려해 어느 선까지 용서할 수 있을지는 충분한 토론을 거쳐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불거진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5년 전에 시작됐지만,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엄청난 재난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의 원인이라는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를 반박하기 위한 연구를 옥시가 서울대 A 교수와 호서대 B 교수에게 맡겼는데 A 교수가 옥시에 유리하게 연구 결과를 변조한 보고서를 썼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A 교수는 유서를 써 놓고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니 복잡한 사건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만일 A 교수의 부정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이다. 아직도 철저한 반성이 이뤄지지 않은 황우석 사건과 같은 스캔들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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