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에 과학수사 기법이 자주 노출되면서 범죄자들이 사건 현장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법을 파악해 수사 기관을 우롱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간단한 수법으로도 지문 등을 남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범죄 현장의 지문 채취 비율이 해마다 떨어지는 등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사건 현장 지문 채취 비율은 2012년 15.3%에서 2013년 13.9%로 떨어졌고, 2014년에는 13.1%까지 내려간 것으로 집계됐다.
김모(40) 씨는 2014년 3월 경기 남양주시의 한 빵집에 들어가 건물주 아들인 척하며 아르바이트생을 속여 관리비 명목으로 8만 원을 받아 달아났다. 김 씨는 이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최근까지 약 2년 동안 전국을 돌며 100여 차례나 범행을 저질렀지만, 경찰은 김 씨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김 씨는 편의점이나 카페에 들어갈 때 유리문을 손등이나 발로 밀고 들어가는 단순한 수법으로 범행 현장에 지문을 남기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손가락에 강력접착제를 발라 지문을 숨긴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김모(21) 씨는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전화를 받고 나온 피해자들을 만나 돈을 뜯어냈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 소지품 등에 자신의 지문이 묻지 않도록 손가락에 강력접착제를 발랐다.
지문뿐만 아니라 발자국도 남기지 않는다. 지난해 2∼12월 사이 서울 노원구와 경기 의정부시 일대에서 64차례에 걸쳐 빈집을 털다 붙잡힌 이모(46) 씨는 신발을 벗고 침입하거나 여러 켤레를 준비해 바꿔가며 신었다. 경찰은 현장 감식 결과 발자국이 아예 없거나, 남아 있더라도 똑같은 발자국이 아니어서 단서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과학수사의 첨단을 달리는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기기에 담겨있는 정보를 분석해 단서를 찾는 수사 기법)’은 운영할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디지털 포렌식은 3월 ‘원영이 사건’ 당시 친부와 계모가 아이를 살해한 뒤 스마트폰에서 ‘살인죄 형량’ ‘존속살해’ 등을 검색한 기록을 찾아내 자백을 이끌어내면서 주목받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디지털증거 분석은 1만4899건에 달했다.
그러나 전국 경찰에 디지털 포렌식 전문 분석관은 모두 56명에 불과하다. 대구·강원·전북·제주는 지방경찰청에 디지털 포렌식 분석관이 1명밖에 없다. 경찰 관계자는 “추적을 피하려는 범죄자들의 수법에 비해 경찰 과학수사의 기법과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올해는 생체증거와 디지털 증거를 신속하게 분석할 수 있는 기법 및 장비 개발, 인력 충원 등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