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양극단을 조절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며 힘든 중간에 서서 양쪽을 포용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가 발전한다고 말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양극단을 조절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며 힘든 중간에 서서 양쪽을 포용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가 발전한다고 말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문학평론가 김성곤(67) 한국문학번역원장은 한국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이다. 한국문학 세계화를 위해 번역·해외 출판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을 5년째 이끌고 있는 그는 ‘낙관’ 정도가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최적기라고 생각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한 번 놓치면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이다. 경제 성장,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한국 이미지에 한류 열풍이 가세하고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몇몇 작가들이 영미권에서 선전하면서 한국문학에 전례 없이 좋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번역원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섭외하고 번역하고 알리며 밀어붙이고 있다고 했다. 기회를 잘 잡으면 문학이 제2의 한류가 될 것이라는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 삼성동 번역원에서 만났다.

2014년 30년 재직한 서울대에서 정년퇴직한 영문학자이자 평론가인 김 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사회, 한국문학이 풀지 못한 숙제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1984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으로 양분된 한국사회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처음 소개한 그는 포스트모더니스트답게 줄곧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학이 영상 매체에 밀린다는 푸념에는 하이브리드·퓨전·융합의 시대에 문학은 새로운 매체와 손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론가로서 가장 큰 관심도 개별 작품 비평이 아니라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 뒀다. 이를 위해 외국의 새로운 이론과 흐름을 빠르고 정확하게 소개하려 했다.

그렇게 30년이 지났지만 이 젊은 비평가가 말했던 과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세계적 연주가가 나오고, 한류 스타가 등장했지만 문학의 세계화는 더디기만 하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구분은 여전히 공고하다. 언어의 장벽을 감안해도 시대 변화에 대한 한국문학의 대응이 느렸다고 결론 내릴 만한데 김 원장을 중심에 두고 보면 그는 한국사회를 수십 년 앞질렀다고 볼 수 있다. 김 원장은 지금도 여전히 자유로웠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사람을 꿈꿨다는 그는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예비 세계 시민이었다. 참 빠른 출발이다. “아버지가 미군정청 통역관이었다. 원래 법학 전공이었는데 ‘난세에 법은 의미 없다. 동서양의 가교를 놓고 의사소통을 돕는 것이 필요하다’며 통역관을 자원하셨다. 아버지 서가에 꽂힌 영어책들을 보고 집에 데려오신 외국 친구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 영미 문화에 친근감을 느끼게 됐다. 곧 소설을 원서로 읽고 미국 영화도 좋아하게 되면서 영문과에 진학했다.”

그가 평생 영문학 교수의 중요 역할 중 하나로 동서양의 다리를 놓고 영문학을 가져와 우리 문학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먼 과거, 아버지의 뜻에서 뿌리내렸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때 방학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시립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는 그는 단편소설 ‘방화’로 대학신문 문학상에 당선되고, 시를 몇 편 발표하기도 했지만 결국 문학평론을 평생 업으로 삼게 됐다. 이 진로 결정엔 4명의 스승이 있었다.

국내 문학계의 석학 이어령, 김우창 선생이 먼저였다. “대학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이어령 선생님의 탁월한 성찰이 깃든 에세이집과 평론집은 나를 문학 비평의 길로 안내했고, 김우창 선생님의 중후한 문학이론은 문학이론의 심오한 세계에 심취하게 했다. 이 선생님은 내게 평론이 소설만큼이나 재미있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김 선생님은 비평 행위가 곧 우리 사유의 중요한 일부이자 삶과의 진지한 씨름임을 보여주셨다.”

1978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미국에서 두 분의 정신적 은사를 만나게 된다. 각각 뉴욕대와 컬럼비아대 지도교수로 만난 비평가 레슬리 피들러와 에드워드 사이드. 1960년대 ‘소설의 죽음’을 선언하고 대중문화 시대를 예언한 선구적 비평가 피들러와 ‘오리엔탈리즘’의 사이드 교수라니. 모두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그는 이 두 분의 스승에게 경계를 허물고 이분법을 넘어 양극단을 포용하는 정신을 배웠다고 했다. “피들러 교수는 유대계 미국인이었고, 사이드 교수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으로 공존할 수 없는 정치적 적이었다. 하지만 두 분은 서로 존경하는 절친한 친구였다. 영상매체와 문학, 예술 소설과 장르 소설의 제휴를 주창하며 SF와 판타지 소설을 썼던 피들러 교수는 문학비평도 소설만큼 재미있고 창작만큼 즐거움을 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사이드 교수는 내게 문학비평이 곧 삶이며 고통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

그는 이들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당시 미국에서도 새로운 사조였던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했다. 여기엔 그를 성장시킨 또 다른 직접적 계기가 있었다. 당시 ‘문학사상’ 주간이던 이어령 선생이 그에게 미국 작가들을 인터뷰해 연재해 줄 것을 부탁한 것. 덕분에 그는 솔 벨로, 로버트 쿠버, 존 바스 같은 유명 소설가와 시인들, 피들러, 사이드, 츠베탕 토도로프 같은 저명한 비평가들과 만나 새로운 세계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참 행운이었죠. 1984년 봄 서울에 도착해 첫 수업에 들어갔더니 한 대학원생이 대뜸, ‘교수님은 리얼리즘 편입니까 모더니즘 편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둘 다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이며 이제는 ‘Either/Or(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을 버리고 ‘Both/And(이것 그리고 저것)’를 포용하는 제3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모더니즘도 이루지 못한 우리였으니 이해받기 어려웠고, 게다가 1980년대 격변의 시대였으니 회색으로 몰릴 입장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갓 돌아온 그가 전한 새 이론은 결국 동구권 붕괴와 맞물려 1990년대 문화 전 영역에서 혁명적 변화로 이어졌다. 김 원장은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줬고,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등 여성 작가를 대거 등장시킨 것”을 당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성과로 꼽았다.

그 뒤 그는 ‘외국문학’ ‘21세기 문학’ ‘문학사상’ 편집주간 등을 차례로 맡으며 강단과 함께 현장에서 비평 활동을 했다. 지금까지 20여 권의 책도 썼다.

지금도 김 원장은 한국 작가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본격 vs 순수의 이분법을 깨고 추리·스릴러 같은 장르 문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직도 정통과 순수에 집착한다. 특이하다. 많은 사람이 아직 흑백 논리에 젖어 있다. 미국에서는 오래전에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없어졌다. (국내에서 대중 작가로 분류되는) 스티븐 킹은 권위 있는 내셔널 북 어워드를 받았고 그의 소설은 기막힌 정치 사회 비판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킹의 처녀작 ‘캐리’는 청교주의와 실용주의의 충돌, ‘살렘스 롯’은 닫힌 사회는 필연적으로 파멸한다는 메시지라고 부연 설명했다.

“피들러 교수는 이미 1960년대에 ‘Cross the Border, Cross the Gap’ ‘The Middle Against Both Ends’라며 지식인은 양극단을 조절하고 양극단에서 욕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분법은 둘 중 하나에 특권을 준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선이 악이 될 수 있고 악이 선이 될 수 있다”는 그는 이번엔 ‘해리 포터 아즈카반의 죄수’를 예로 들었다. “늑대인간이 나쁜 줄 알았는데 좋은 사람이듯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없다. 경계는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다”고 했다.

종이책과 영상·인터넷·디지털 문화와의 관계에서도 그는 ‘Cross the Border’ 자세를 유지했다. “평론가 요아힘 패히가 ‘영화는 잠자는 미녀를 깨우는 왕자와 같아서 자고 있는 소설을 읽게 한다’고 했다. 영화 ‘장미의 이름’을 보고 너무 좋아서 소설을 읽었고 학생들에게도 읽혔다. 영화가 문학을 도와준 것이다. 영화를 문학의 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제휴하고 친구로 삼아야 한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도 그렇다. 제휴하면 저변이 넓어진다. 요즘 젊은이들이 스마트폰만 본다며 빼앗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젊은이에겐 스마트폰이 책이다. 뺏을 생각하지 말고 그 안에 소설을 넣을 생각을 해야 한다. 문학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담는 그릇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그는 게임에도 우리 민담, 신화, 설화, 역사를 넣어야 한다며 종이책과 문학을 둘러싼 시대의 변화를 세대 흐름에 비유했다. “할아버지-부모-자녀 세대를 보면 할아버지는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나고 부모는 할아버지가 되고 자녀는 부모가 된다. 변화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손자는 잘 지내지 않는가. 종이책과 새로운 매체도 그렇다. 모두 함께 가야 한다.”

이런 생각은 그의 탐독 목록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당연히 문학, 영화, 만화가 포함되고 예술과 대중 장르를 넘나든다. 그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매슈 펄의 ‘단테 클럽’, 오르한 파무크의 ‘내 이름은 빨강’을 재미있게 읽은 작품으로 꼽았고, 최근엔 번역원이 번역·출간 지원해 멕시코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구병모의 판타지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었다. 어린 시절 만화방에서 자신의 긴 문학적 여정을 시작했다는 그는 지금도 여전히 만화광이다. 이토 준지(伊藤潤二), 우라사와 나오키(浦澤直樹) 만화는 거의 다 봤고 일본에서 나온 ‘신암행어사’도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미국 영화를 통해 미국 문화를 살핀 책을 5권이나 낸 저자답게 당연히 주말이면 영화도 꼭 챙겨본다.

“나는 행운아다. 이 세상에 재미있고 유익한 소설들을 읽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며 날마다 삶의 진리를 깨우칠 수 있는 직업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문학을 전공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2007년 제18회 김환태 평론문학상을 수상한 후 밝힌 그의 소감이다. 이 소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행복을 이야기했다. “돌아보니 행복했다. 평생 읽고, 배우고, 깨우치고, 공자의 말씀처럼 모르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물었다.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인터뷰 = 최현미 부장 (문화부)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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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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