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하는 비행기는 늘 아득한 느낌을 준다.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에 시선을 두는 동안 권태와 속박에 붙들린 삶에서 함께 벗어나는 듯한 쾌감이 있다. 공항을 소재로 사색적인 글을 쓴 알랭 드 보통은 ‘비행기에 올라타면 우리는 몇 시간 뒤에 아무 기억이 없는 장소, 아무도 우리 이름을 모르는 장소에 착륙할 것이다. 어딘가로 이륙하는 비행기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라고 썼다. 그 탑승과 이륙 사이에 활주로가 있다.
활주로는 차원 이동의 경계다. 이륙과 함께 1차원 직선에서 3차원 공간으로 비약한다. 동시에 자국에서 타국으로,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예측 가능한 곳에서 불가측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활주로는 자기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다 준다.
공항 규모는 활주로 시설에 비례한다. 남아프리카 레소토 왕국의 마테카니 공항 활주로는 396m로 세계에서 가장 짧다. 웬만한 크기의 항공기가 이착륙하려면 3000m 정도는 돼야 한다. 우주왕복선이 귀환할 때 쓰는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 활주로는 3.2마일(5120m)에 달한다.
항공기는 하늘에 떠 있을 때 평온하다. 사고는 주로 활주로상에서 일어난다. 이륙 전 움직이는 것도 넓은 의미의 운항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재판에서는 활주로 이동이 항로에 해당하느냐가 쟁점이 됐다. 인천국제공항에는 하루 평균 830기, 2분에 한 대꼴로 항공기가 뜨고 내린다. 피크 시간대에는 거의 포화상태가 된다. 공항에 들어온 모든 항공기는 분 단위로 쪼개진 스케줄과 관제탑 지시에 따라 주기장(駐機場) 대기, 탑승 및 화물작업, 활주로 이동 등을 진행해야 한다. 한 치의 오차가 있어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1977년 스페인 테네리페에서는 KLM·팬암 항공기가 이륙 직전 서로 마주 보고 달리다 충돌, 583명이 숨지는 항공사상 최악의 인명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3월 청주공항에서 활주로를 침범한 항공기가 주행 중이던 다른 항공기와 충돌할 뻔한 일이 벌어지더니, 두 달이 채 안 돼 인천공항에서도 등골이 서늘한 장면이 재연됐다. 그 사이 청주공항에선 민간인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활주로에 무단 진입하는 소동도 일어났다. 비일상의 영역에까지 일상의 반칙이 수시로 끼어드는 일련의 상황이 어째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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