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펜실베이니아가(街) 1600번지의 백악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옥시덴탈(Occidental) 레스토랑’이라는 식당이 있다. 번역하면 ‘서양 식당’ 정도 되는데, 1906년 세워진 식당이다. 벽면에는 110년간 이곳을 찾았던 각국 유명인사들의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다. 동양인도 한 명 있다. ‘1910년 5월 6일’과 함께 적힌 서명은 도쿠가와 이에사토(德川家達). 이에사토는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15대 쇼군(將軍)인 요시노부(慶喜)의 후계자였다. 막부는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으로 폐지됐지만, 이에사토는 1890년 창설된 지금의 참의원 격인 초대 귀족원 의원을 지냈고 1901∼1933년 의장도 지냈다. 이에사토는 1921년 워싱턴 해군회의에 참석한 일본 외교관이기도 했다.
일왕 입장에서는 단죄해야 할 막부의 후손이 정치인·외교관으로 변신한 것은 우리에게는 이례적으로 보이지만, 일본에서는 흔했다. 2차 대전 전범으로 기소될 위기에 처했다가 부활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도 대표적 사례다. 일본 외교는 능력이 있다면 전범도 가리지 않고 중용하는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만큼 조직적이고 치밀하며, 1945년 광복 이후 외교권을 되찾은 한국보다 대미 외교 역사도 훨씬 길다.
그런 일본이 5월 말 종전 이후 최대 외교 금자탑을 쌓게 됐다. 오는 26∼27일 일본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원폭 피해지 히로시마(廣島) 방문을 성사시킨 것. 앞서 일본은 아베 총리의 측근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와 가토 가스노부(加藤 勝信) 납치문제 담당상을 연달아 미국에 보내 오바마 행정부를 집중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미 민간외교 창구인 사사카와(笹川)재단도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워싱턴에 파다했다.
물론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원폭 투하를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장관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지난 4월 히로시마를 찾은 존 케리 국무장관도 사과는 하지 않았고, 최근 ‘오바마 대통령, 히로시마에 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으로 찬성 여론에 군불을 지폈던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도 사과라는 단어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 중국 학자들은 임기 말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동북아에 나쁜 메시지를 줄 것”이라며 격앙하고 있다.
반면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제3국인 미·일 간 역사 문제에 대해 뭐라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셔먼 전 차관이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권고하면서 지난해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례로 제시했는데도 ‘남의 문제’라는 관망적 태도를 보인 셈이다. 일본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담긴 ‘불가역적 최종 해결’을 언급하면서 마치 역사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일본의 잘못된 인식을 더욱 강화해주고, 전범 국가인 일본을 원폭 피해국으로 둔갑시키는 면죄부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USA투데이는 10일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명백한 사과를 하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방문 자체를 사과로 해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일 관계 강화는 한반도에는 약이기도 하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역사에서도 이미 증명된 바 있다. 1905년 11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앗아간 을사조약의 이면엔 같은 해 7월 미·일 간에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치밀하게 준비한 일본 외교가 있었다. 이게 바로 정부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명확하게 반대했어야 하는 이유다. 막부 후손에 전범까지 중용, 대미 외교에 ‘올인’했던 일본 외교에 또 당했다는 씁쓸함이 남는다.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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