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10여 년 만에 베트남을 방문했다. 더위는 여전했지만, 호찌민공항에 내리자마자 달라진 베트남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도로 등 인프라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높이 솟은 건물과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야경(夜景)이 베트남의 변신을 웅변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경제 부처를 담당해왔지만, 우리나라가 베트남에 지원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동안 꾸준히 늘었을 테니 이젠 꽤 될 것’이라고 어림짐작하고 있었을 뿐이다. EDCF는 우리나라가 1987년 개발도상국의 산업 발전과 경제 안정을 지원하고, 이들 국가와의 경제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설립한 기금이다. EDCF 자금은 대부분 장기저리(長期低利)로 지원된다. 이번 방문길에 우리나라가 1995년 이후 베트남에 지원한 EDCF 자금 규모가 23억7000만 달러(약 2조6000억 원, 2015년 말 기준)에 달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베트남은 우리나라가 EDCF 자금을 지원하는 56개국 중에서 규모가 큰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베트남에 지원한 자금의 규모가 조 단위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나라의 베트남에 대한 EDCF 지원 규모는 일본에 이어 2위라고 한다. 일본이 1992년부터 베트남에 지원한 규모(214억 달러)는 우리나라의 9배쯤 된다. 일본 자본이 많이 들어간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통한 지원까지 포함하면, 아시아권에 대한 일본의 지원 규모는 압도적이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랜드마크 건축물은 일본이 지은 것이 많다. 유상(有償)이든 무상(無償)이든 다른 나라에 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그 나라의 스타일도 드러난다. 사람이 여행을 함께하면 인격(人格)이 드러나듯이, 국가도 돈을 쓰는 과정을 살펴보면 국격(國格)을 알 수 있다.
GS건설과 한신공영이 베트남 최대의 곡창 지대인 메콩 델타지역에서 건설하고 있는 사장교(斜張橋) 방식의 밤콩(Vam Cong) 대교 건설 현장도 EDCF 자금이 들어간 곳이다. 일본의 3대 건설사가 인근에 세운 건터대교 공사 과정에서 상판이 떨어져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간에 ‘묘한 경쟁심’까지 개입된 현장이다.
대낮이면 섭씨 40도를 훌쩍 웃도는 더위를 참고, 연약지반(軟弱地盤) 때문에 일본의 대표적인 건설사들까지 부실 공사로 지금도 하자 보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 현지 업체들과 함께 난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내에서는 사양 산업이라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한국 건설의 저력을 다시 느꼈다.
베트남 현지에서 EDCF 자금 집행을 총괄하고 있는 박종규 한국수출입은행 하노이사무소장은 “국가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돈은 잘 쓰느냐, 못 쓰느냐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이다. 2조 원 넘는 돈을 지원했으면 그에 걸맞게 실속도 차려야 하고,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젠 우리도 돈 버는 것뿐만 아니라 돈 쓰는 것에도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haed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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