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싯다르타는 태자 때에 카필라성(城)의 동·남·서·북 4문 밖에 나가 인생의 4고(四苦)를 직접 보고 출가를 결심한다. 이를 불교에서는 사문유관(四門遊觀) 또는 사문출유(四門出遊)라고 한다. 10여 년 전에 네팔 타라이 지방에 있는 카필라성을 가본 적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엔 말이 성이지 부서진 벽돌 같은 붉은 돌들만 깔려 있는 폐허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관광객들에게 구걸하는 현지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싯다르타가 동문 밖에서 늙은이를 보고, 남문 밖에서 병든 이를 보고, 서문 밖에서는 사자(死者)를 보고, 북문 밖에서는 수행자를 만나 마침내 출가 뜻을 굳히게 되었던 그 당시 성 밖 사람들 사는 모습과 지금 상황이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싯다르타가 그 자리에서 자기 혼자의 해탈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수행을 서원한 것은 바로 그들 생명에 대한 ‘자비(慈悲)’에서였을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비와 사랑 말고 종교를 말할 수 있을까.
‘아난(阿難)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아난은 붓다 입멸 시까지 25년 동안 곁에서 시자로 있으며 가장 많은 설법을 듣고 기억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제자로 일컫는다. 아난이 출가하기 전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출가를 망설였다. 붓다가 아난에게 물었다. ‘네가 그 여인을 사랑하는 것이 어느 정도냐?’ 아난이 대답했다. ‘저는 돌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오백 년 바람에 씻기고, 오백 년 햇볕에 쪼이고, 오백 년 비를 맞은 후 그녀가 저를 밟고 건너기를 원합니다.’ 경전 출처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사사로운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천 년을 넘나드는 그 정도 사랑의 근기(根氣)를 가졌으니 아난이 붓다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이 됐을 것이다. 붓다의 자비야 더 컸을 것이다. 그것이 왕자였던 싯다르타를 한량없는 깨달음에 이르게 했고, 2500년이 지나서도 제자들이 끝없이 뒤를 따르게 하는 원력이 아니었을까. 예수도 사랑 속에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한 것 아닌가.
하지만 요즘엔 ‘자비와 사랑 말고 종교를 말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적어도 종교만이라도’ 제대로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묻는 세상이 됐다. 국제적인 종교 간 분쟁이 아니더라도, 우리 안에도 사랑이나 자비가 아니라 종교의 이름으로 저주를 퍼붓는 일들이 얼마나 빈번한가. 일부 종교의 성직자나 신자들은 사회나 구조가 보호하지 못해 마지막으로 종교에 기대야 할 사회적 약자를 오히려 공격하는 일을 적지 않게 벌인다. 성 소수자에 대한 근본주의 신앙인들의 입에 담기 어려운 저주가 대표적이다. 성직자가 속세의 평균적 윤리기준에도 못 미치는 불미한 일들을 저지르고도 거기에 항의하는 신자들을 되레 박해한다. 교단의 잇속만을 챙겨 신자들을 동원해 얼토당토않은 여론몰이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이미 다수 종교에서 실망한 신자들이 ‘제도 종교의 밖’을 꿈꾸는 움직임이 잔잔하지만 널리 일고 있다.
내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퍼지는 하루가 됐으면 한다.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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